[기자의 눈/신민기]“이 여자가 성폭행당할 뻔한 여성” 서울경찰청의 ‘인권불감증’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2일 21시 00분


코멘트
신민기 사회부 기자
신민기 사회부 기자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지방경찰청 2층 회의실에서는 외국인 근로자의 성폭행 사건에 대한 브리핑이 열렸다. 인천 남동구의 한 공장에서 일하던 몽골 출신 외국인 근로자 3명이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A 씨가 불법 체류자라는 약점을 노려 성폭행하려 한 것. 다행히 이들의 범행은 A 씨의 완강한 저항으로 미수에 그쳤다.

하지만 A 씨는 이날 또 다른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경찰의 안이한 인권 의식 때문에 피해자인 A 씨의 얼굴이 고스란히 기자들에게 공개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방송 뉴스 촬영을 위해 영상 자료를 제공한다며 피해 여성 A 씨와 피의자 2명을 함께 브리핑에 데리고 나왔다. 이 자리에 함께 나온 A 씨의 친구는 “(A 씨가 고국에) 자녀가 있는 사람인데 피해자에게 이렇게 카메라를 들이대도록 놔두면 어떡하느냐”며 경찰에 따져 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언론에서 다 알아서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경찰은 또 브리핑 중간에 A 씨와 피의자만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우기도 했다. 좁은 공간에서 피의자인 외국인 근로자들은 A 씨를 가만히 노려보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성폭행 미수의 증거로 A 씨가 입은 상처를 찍은 사진을 취재진에게 제공했다. 이 중 일부 사진에는 A 씨의 상의 속옷이 노출되기도 했다.

경찰이 사건 브리핑을 하면서 피해자를 부르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또 본질적으로 이날 브리핑에 A 씨의 진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성폭행을 당하고도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병원 치료도 못 받는 피해자가 많을 것 같아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였다”며 “A 씨에게 먼저 협조를 구한 뒤 언론에 인터뷰를 제공하고 사진을 공개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폭행 사건은 직접적인 1차 피해는 물론 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2차 피해도 그에 못지않다는 점을 경찰이 몰랐을 리 없다. 만약 외국인 근로자가 아닌 우리 국민이었다 해도 이럴 수 있었을까. 피해자의 동의를 구했다고 하지만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끔찍한 성폭행 피해를 볼 뻔한 A 씨가 과연 자신에게 도움을 준 한국 경찰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인권’은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사람이면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다. 수도 서울의 치안을 책임지는 서울경찰청이 어떻게 이런 ‘인권 불감증’에 걸려 있는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따름이다.

신민기 사회부 mink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