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병훈]이제 동물복지도 생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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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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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메이저라는 수퇘지는 동물들을 모아 놓고 일갈한다. “동지 여러분. 우리들의 생활이란 비참하고 고생스럽고 짧습니다. 태어나서 겨우 목숨만 유지하고 일하다가 나중에 쓸모없어지면 처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동지 여러분! 인간을 여기서 몰아냅시다. 반란을 일으킵시다!” 이것은 작가가 카를 마르크스를 메이저로 내세워 노동계급 착취를 비유한 정치 풍자 소설의 대목이다. 그러나 최근 구제역이 발생해 정부가 30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를 도살처분하고 그중에서도 돼지 280만여 마리 중 상당수를 생매장한 것을 보고 동물학자인 나로서느 수퇘지의 인간에 대한 분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동물 학대는 그리스 학자들이 포유동물을 산 채로 해부한 데로 거슬러 올라간다. 13세기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동물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에게 자비를 베풀 의무가 없다고 했다. 17세기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 사람이나 동물 모두 기계인 점은 다름없지만 사람만이 이성을 갖고 있어 고통을 느낀다며 동물을 다룰 때 동물이 내는 비명은 단지 기계가 돌아갈 때 나는 ‘삐걱’ 소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 후 동물 학대는 곰을 쇠사슬로 매어 놓고 개들이 물어뜯게 하기, 투견, 투계, 투우, 로데오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러한 동물 학대를 막는 동물보호법안이 1800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상정되었을 때 맹렬한 반대에 부닥쳤다. 이유는 노동계급이 누리는 영국의 전통 놀이가 박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1822년에야 ‘소 취급법’이 통과되고 10여 년 후엔 개와 고양이도 보호받게 되었다.

동물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로는 그들이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자기 인식을 비롯해 상당한 사고능력과 감정을 가진다는 데 있다. 그래서 ‘동물해방’의 저자인 미국의 피터 싱거는 이탈리아의 동물해방론자인 파올라 카발리에리와 함께 과거부터 당연시되었던 종간 차별을 없애 유엔으로 하여금 우선 ‘유인원 권리선언’을 채택하게끔 유도하자는 ‘유인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제인 구달과 리처드 도킨스도 이에 동참하고 있다.

이번에 생매장당한 돼지로 말하면 우리 사람처럼 꿈을 꾸고 색깔을 구별하며 은은한 달빛에 ‘노래’로 화답하는 정서적 동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도널드 브룸 박사는 돼지가 자기 인식 능력을 갖는지 시험하기 위해 돼지 여덟 마리 앞에 거울을 세워놓고 관찰했다. 처음엔 거울 속의 돼지가 다른 돼지인 줄 알다가 차츰 자신인 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 점을 확인하고자 이번엔 먹을거리 한 그릇 앞에 가림막을 치되 거울 속에만 먹을거리가 비치도록 놓았다. 선풍기를 돌려 먹이 냄새가 돼지 쪽으로 가지 않도록 했다. 그러자 여덟 마리 가운데 일곱 마리가 단 25초 안에 거울 반대쪽으로 먹이를 향해 달려갔다. 나머지 한 마리만이 거울 뒤쪽으로 가 서성거렸다. 돼지가 자기 인식 능력을 갖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

나는 오래전 TV에서 개가 끔찍한 방법으로 도살되는 장면을 보고 종종 먹던 보신탕을 딱 끊었다. 보신탕 애호가들은 이것은 한 나라의 전통과 문화의 문제이므로 불가침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류의 근대사를 보면 인종 차별, 여성 차별, 그리고 오늘날에는 동성애자 차별까지 무너지며 보편적 가치가 바뀌고 있다. 바야흐로 종 차별 철폐의 문턱에 들어섰다. 시대정신이 바뀌고 있다.

이병훈 전북대 명예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로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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