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손영관]화산, 땅속의 변덕스러운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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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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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지질학 연구에 수십 년을 몸담아온 필자의 경험으론 작년처럼 화산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여러 차례 장식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작년 봄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로 유례없는 항공대란을 경험하고 곧이어 백두산 분출설로 백두산의 분출이 가져올 사회적 여파에 대한 우려가 화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아니었나 한다. 이로 인해 예전 같았으면 해외토픽으로 스쳐 지나갔을 외국의 화산 분출 소식이 최근에는 주요 뉴스로 관심을 받고 있다.

화산 분출은 지구가 살아있는 행성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 현상으로, 인간은 오랜 세월 화산과 함께 살며 온갖 재해를 경험해 왔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로 폼페이라는 로마의 도시가 한순간에 사라진 사건, 그리고 기원전 1620년 지중해 연안의 산토리니 화산이 분출하여 미노스(크레타) 문명이 멸망하고 이것이 ‘아틀란티스의 전설’로 전해져오는 것이 대표적인 화산재해 사례이다. 서기 926년 발해 멸망이 백두산의 대규모 분출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그럴듯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화산은 한 문명의 몰락을 가져올 만큼 파괴적인 분출을 할 수도 있고, 작년 아이슬란드 사례처럼 재해 범위가 지구를 휘감을 정도로 광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경우 백두산 분출 이후 100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화산재해를 경험하지 못했다. 세계 활화산의 10%가 분포한다는 일본을 바로 옆에 두고도 1000년 넘게 화산으로부터 안전하게 살아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누구도 화산재해에 대비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무방비 상태로 남게 된 우리의 현실은 걱정이다.

고대인들은 종종 화산을 가공할 힘과 변덕스러운 성격을 지닌 괴물로 묘사했다.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도 화산은 아직 정체불명에다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나 다름없다.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과학기술 진보가 화산 앞에서는 초라해지기만 한다. 어떤 과학기술로도 화산이라 불리는 괴물의 힘을 제압하고 분출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세계 학자들이 100년 넘게 현대적 방법으로 화산을 연구하고 이해하려 했지만 아직은 화산의 변덕스러움에 혀를 내두르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조용히 용암을 흘려 내보내던 아이슬란드의 화산에서 그렇게 엄청난 화산재가 뿜어져 나와 유럽의 하늘길을 막을 줄은 어느 화산학자도 예상을 못했으니까.

예전 같았으면 화산재해 축에도 못 낄 화산재 구름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항공대란과 물류 마비가 생긴 작년의 사태를 보면 현대사회가 자연재해에 더 취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는 1000년 넘게 이렇다 할 화산재해가 없었지만 그건 과거의 일일 뿐이다. 과거에는 재해로 취급되지 않던 자연현상이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사회에선 예기치 않은 재해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최근의 화산분출 사례로 확인된 듯싶다.

화산재해에 거의 무방비 상태인 우리의 현실이 걱정인 것은 이런 이유에다 백두산이 있기 때문이다. 약 2000만 년 전 동해가 갈라지고 화산열도 일본이 태평양 쪽으로 물러남에 따라 한반도는 화산 빈국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지각운동으로 백두산이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화산활동은 장장 2000만 년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고 1000년 전에는 인류가 거의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분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분출 이력이 있는 화산이 당장 활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백두산 밑의 마그마라는 괴물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깨어나 포효할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괴물의 정체를 최대한 알아내고 대비하는 사람에겐 괴물이 두려움의 대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손영관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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