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전성철]법관 전관예우 막는 윤리강령, 안지켜도 그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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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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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사회부 기자
전성철 사회부 기자
#1. A 부장판사는 최근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낸 뒤 B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기로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B 법무법인은 A 부장판사가 지난해 항소심을 맡아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국회의원직 박탈을 면한 유력 정치인의 변호를 맡았던 로펌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사표를 내기 반 년 전에 선고가 이뤄졌고 A 부장판사가 그 사건을 배당받은 것은 그보다 더 이전의 일이지만 오해를 받기 좋은 모양새가 됐다.

#2. 지난해 법원을 떠난 C 변호사는 개업 직후 자신이 재판장을 담당했던 경제사범 전담 형사부가 심리를 맡은 대형 주가조작 사건을 수임했다. C 변호사를 선임한 피고인들은 최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다. 전관예우를 기대했을 그들로서는 비싼 변호사 비용을 치른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의 후배법관을 향해 열변을 토하는 C 변호사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구체적 행동지침을 담아 13일 공개한 ‘법관윤리’에는 로펌과 취업문제를 협의할 때에는 해당 로펌이 선임된 사건을 회피해야 하며 자신의 재판부에 해당 로펌이 선임된 사건을 맡은 경우엔 그 로펌과의 취업 협의를 자제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취업협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로펌과 판사 본인만 알 수 있는 내밀한 사안이다. 결국 A 부장판사 사례의 경우 “선고가 이뤄졌을 당시에는 취업문제를 협의하기 전이었다”고 주장하면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다.

‘법관윤리’는 또 같은 법원에서 근무했던 동료법관이 퇴직 후 1년 이내에 형사사건의 변호인 선임계를 냈을 경우 재판장은 사건을 회피하는 것이 ‘적절’하며 이미 사건이 배당된 경우 ‘재배당을 요구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C 변호사와 문제가 된 사건의 담당 재판장은 1년 이상 함께 같은 법원에 근무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이 사례처럼 “회피·재배당이 늘면 사건처리가 지연된다”, “같은 법원에 근무했다고 꼭 가까운 사이는 아니다”라는 등의 이유로 그냥 넘어가는 일이 적지 않다.

전관(前官) 변호사에게는 강제력도 없는 내부단속 규정에 불과한 ‘법관윤리’가 이처럼 허술하기까지 해서는 법조계의 고질인 전관예우는 사라지지 않는다. ‘법관윤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조금 더 촘촘한 ‘그물’을 짜고 이를 어길 경우 강력한 제재를 받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

전성철 사회부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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