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덕민]국군포로 귀환,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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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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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국군포로! 6·25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은 나라를 위해 싸운 이들의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가 7만4000명에 이른다. 1994년 조창호 소위를 필두로 국군포로들은 자발적으로 또는 가족의 힘으로 귀환하고 있지만, 정작 나라는 공식적으로 단 한 명의 국군포로도 구출하지 못했다. 귀환한 국군포로들을 통해 500여 명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세기 생이별… 이미 80대 고령

국군포로들이 겪는 고초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노예처럼 위험한 불발탄 처리는 물론이고 탄광의 발파공으로, 나이가 들면 벌목공으로 내몰렸다. 그들 가족이 겪는 차별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국군포로들은 이제 80대 고령이다. 문제는 지체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탈북 이후 8개월이나 제3국의 우리 공관에 발이 묶여 있던 85세 국군포로 김모 씨는 한 국회의원에게 A4 용지 21장에 촘촘히 써내려간 장문의 편지를 전달했다. 구구절절이 고향을 향한 그의 애절한 마음이 녹아 있는 사연은 비록 늙고 병들었지만 죽기 전 부모와 고향산천을 반드시 보고자 하는 인간의 강렬한 의지를 확인시켜 준다. 그 열망이 이루어져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꼭 발을 씻겨주던 누이는 이미 91세가 돼 거동이 어려웠지만 76세 여동생은 떡국을 끓여 오빠에게 내놓았다. 이것이 국군포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국군포로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가? 물론 체제를 달리하는 분단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복잡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체제가 다른 나라들 사이에서도 문제는 해결돼 왔다.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 간, 동서독 간에도 포로보다 정치적으로 더 어려운 스파이나 정치범들의 송환이 이루어진 바 있다. 혹자는 북한은 소련이나 동독과 다른 특수한 체제이기에 단순 비교할 수 없다고 한다.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국군포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창호 소위의 귀환 이후 80명의 국군포로가 귀환했으며, 최근 들어 귀환 빈도가 늘고 있다. 여기서 문제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국군포로는 돈이 되는 사업이다. 이미 중국과 북한 내 브로커들은 돈이 되는 국군포로를 탈북시켜 가족과 연결해 주고 있다. 탈북한 새터민들도 ‘돈’으로 북한 내 가족들과 통화를 하고 어렵지만 탈출시켜 상봉도 하고 있다. 우리는 국군포로 문제가 정치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돈의 문제’인 시대에 살고 있다.

한국판 ‘프라이 카우프’ 도입해야

과거 서독은 ‘프라이 카우프(Frei Kauf·자유를 산다)’ 제도를 통해 15억 달러 상당의 현금과 물자를 동독에 제공하고 정치범 3만3000명을 석방시켰다. 미국은 북한 내 미군 유해 발굴을 위해 유해 한 구당 8만∼9만 달러를 쓰고 있다. 현재 330구의 유해를 귀환시켰다. 반면 우리는, 미 의회 조사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정부 10년간 69억 달러의 현금과 물자를 북한에 제공했지만 단 한 명의 국군포로도 구출하지 못했다. 우리는 정상회담을 위해 현금 5억 달러를 지불한 적도 있다. 가족들이 국군포로 귀환을 위해 브로커에게 쓰는 돈은 약 1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생존이 확인된 500여 명의 포로를 귀환시키는 데 1억 달러도 들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고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대한민국에서 나라를 위해 싸운 늙고 병든 용사들의 귀환 문제를 언제까지 가족들과 보상금을 노리는 브로커들에게 맡겨둘 셈인가? 한국판 프라이 카우프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한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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