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은지]또 ‘블랙리스트’ 타령… 누가 색안경 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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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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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지 문화부
강은지 문화부
KBS에서 때 아닌 ‘블랙리스트’(방송금지대상자) 논쟁이 재연됐다. 한 시사 프로그램의 기자가 내레이터로 가수 윤도현 씨를 섭외했는데 팀장과 부장이 석연찮은 이유로 반대했다고 노조가 주장한 것이다. 문제의 프로그램은 8일 방영된 ‘시사기획 KBS 10’이다.

KBS 새 노조(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윤 씨가 의식 있는 연예인이라는 점과 지난 정권의 사람이라는 선입관이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며 “정말 KBS에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프로를 담당한 탐사제작부는 “윤 씨는 시사 프로 내레이터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기자가 담당 팀장과 부장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섭외를 독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새 노조 측은 “(담당 기자가) 팀장과 부장에게 수차례 보고했고 ‘나는 윤도현입니다’로 시작되는 가(假)원고도 제출했다”고 재반박했다. 하지만 팀장은 “지난해 말 ‘(윤도현 씨) 섭외가 어려워 다른 사람을 생각 중이다’라는 보고 이후 받은 게 없다”고 했고, 부장은 “2월 1일 처음 보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양쪽의 어지러운 공방을 정리하면 노조 쪽 얘기는 ‘윤 씨로 정하고 보고도 했는데 팀장 부장이 나중에 반대했다’는 것이고, 팀장과 부장은 ‘보고받은 적도 없으며 나중에 알고 부적격자로 판단해 다른 사람으로 결정했다’는 반박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다.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된 것도 아니다. 새 노조도 “문건 형태의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 없다”며 ‘마음속 블랙리스트’라는 군색한 표현을 썼다.

하지만 일선 기자의 견해를 팀장과 부장이 반대한다고 “블랙리스트 때문 아니냐”고 공개 성명까지 내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 방송은 전 국민이 보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가 판단하고 팀장이 검토하며 부장이 다시 본다. 문제가 생겼을 때 기자뿐만 아니라 그 위의 팀장과 부장까지 줄줄이 책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새 노조도 출연자 선정 권한에 대해 “큰 문제가 없을 경우 (담당 기자가 결정한) 그대로 확정된다”며 ‘큰 문제’라는 단서를 달아 게이트키퍼로서 팀장과 부장의 권한을 인정했다.

팀장의 견해가 나와 다르다고, 그리고 팀장이 거부한 인사가 진보 성향의 인사였다는 이유만을 들어 ‘마음속 블랙리스트’ 때문이라고 성내는 새 노조에 묻고 싶다.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도 이번처럼 객관적 논거와 증거 없이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독단과 선입관 아니냐고 말이다.

강은지 문화부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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