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왕오천축국전’ 본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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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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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는 1908년 둔황 석굴 고문서에서 책명도 저자도 알 수 없는 필사본 두루마리를 발견했다. 신라 고승 혜초(慧超)의 ‘왕오천축국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펠리오 자신은 “법현의 ‘불국기’ 같은 문학적 가치도 없고 현장의 ‘대당서역기’ 같은 정밀한 서술도 없다”며 이 책의 가치를 폄하했다지만 많은 학자는 8세기 인도의 사정을 전한 이 책의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 첫날인 2일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을 비롯한 유물을 관람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불교 역사에 혜초 스님 같은 분이 계셨다는 것은 대단하고 위대한 일”이라며 “자랑스럽고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바쁜 대통령이 전시장을 직접 찾은 것은 부처님 오신 날에 축하 글 하나 보내는 것과는 다른 정성이 들어있다. 혜초에 대한 발언에서는 불교를 향한 친근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개신교인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가 다녔던 삼각산 문수사를 자주 찾았다. 비구승 중심으로 불교를 재편한 정화운동도 그의 지원이 없었으면 생각하기 힘들다. 해인사에 걸린 ‘해인대도량(海印大道場)’이란 현판을 써 준 것도 그였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서울 봉헌’ 발언이 반발을 일으켰고 대통령 취임 후 소망교회 교인이 포함된 이른바 ‘고소영’ 인사로 구설에 올랐다. 그가 직접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정부 교통정보시스템의 사찰 정보 누락, 여당의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 등도 불교계의 불만을 샀다. 이 대통령의 ‘왕오천축국전 친견(親見)’은 그래서 눈길을 끈다.

▷한국 불교의 유산은 종교이기 이전에 전통문화의 한 부분이다. 신라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유학하고 인도를 다녀온 혜초는 불교 승려이기 이전에 ‘한국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릴 만하다. ‘왕오천축국전’에는 고향을 그리는 혜초의 시가 나온다.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이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일남(日南·중국의 남쪽)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경주)으로 날아가리.’ 고향이 그토록 그리웠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혜초의 ‘1300년 만의 귀향’을 우리 대통령이 찾아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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