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니컬러스 크리스토프]기부만으론 아이티 못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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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서 지진이 일어난 지 1년 정도 지났다. 하지만 100만 명 이상이 여전히 텐트에서 살며, 재건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현실은 지금까지 이뤄진 외국 원조나 도움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드러낸다.

따뜻한 마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정말 아이티 같은 빈국을 도우려면 단순히 원조에 그쳐선 안 된다. 스스로 삶을 일굴 일자리와 같은 사다리를 줘야지 앉아서 그냥 받아먹게만 만들어선 안 된다.

최근 아이티에서 운영되는 한 자조(自助) 프로그램은 그런 면에서 눈에 띈다. 아이티의 한 가톨릭 신부가 미국인 경영 컨설턴트를 고용해 운영하는 농민은행 ‘폰코즈’ 프로그램이 그것인데 여기에 참가한 35세 여성 오데실 진 씨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5∼15세 자녀 5명을 두고 있다. 아이들 중 누구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집엔 가축 한 마리 없었고,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18개월짜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1년쯤 지난 지금,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새로 시작한 자재업도 잘되고,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닌다. 언젠가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꿈도 갖게 됐다.

이런 변화의 숨은 공신은 프로그램 도우미 파스칼 조제프 씨였다. 그는 가족이 스스로 생활을 영위할 만한 일을 찾도록 옆에서 도왔다. 고민 끝에 목재를 구입해 자재로 만들어 팔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힘든 일이었지만 수익이 괜찮았다. 또 염소 두 마리와 병아리 네 마리도 키웠다. 조제프 씨는 울타리를 만들고 가축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줬다. 망고나무 15그루를 심게 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진 씨는 이제 성장한 닭에게서 얻은 계란을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계란을 부화시키면 닭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즉 재투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폰코즈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도움을 받는 대신에 꼭 지켜야 하는 수칙이 있다. 일정한 수익은 저축해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 아이는 꼭 학교에 보내야 하며, 최소 하루에 두 번은 따뜻한 음식을 먹여야 한다. 이번 방문에 내 아이들도 함께 갔는데 열여섯 살인 아들은 “아빠, 나도 매일 따뜻한 음식을 두 번 먹진 못해요”라며 놀라워했다.

미국이건 아이티건, 빈곤은 자기 파괴적인 습성을 지닌다. 자녀에게도 가난을 대물림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폰코즈는 참가자의 수입을 알코올보다 교육에 투자하도록 만들어 이런 악순환을 깨뜨리는 데 주력한다. 조제프 씨는 “오늘 게으름 피우고 술 마시면, 다음 날 자신의 아이가 굶는다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 20세 여성은 게으름을 피우다 아기 염소를 굶어 죽게 했다. 겨우 얻은 첫 수입은 화장품을 사는 데 다 써버렸다.

아이티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일회성 음식이나 옷이 아니라 삶을 일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코카콜라사가 2만5000명을 고용할 망고주스 공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이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최근 한국의 한 의류회사가 공장을 세우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극심한 빈곤에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방식대로 그저 기부물품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결코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진 씨와 같은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먹고살 길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선사업’이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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