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조성하]가짜 산타의 희망배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3일 03시 00분


내 유년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랜 것과 일치한다. 다섯 살쯤일까. 아침에 일어나니 사탕이며 초콜릿이며 작은 장난감으로 배가 터질 듯 꽉 들어찬 빨간색 망사 양말이 나와 누이의 머리맡에 놓여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는 1963년.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0년 후였으니 이런 선물이 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우리 가족은 서울 청파동의 한 일본주택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다. 그러니 그런 선물은 ‘호사’였고 궁핍했던 부모님으로서도 그런 선물이 쉽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럼에도 우리 남매가 그렇게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지금도 그걸 추억할 수 있는 것. 그건 모두 크리스마스에 대한 꿈과 환상을 깨지 않으려는 부모님의 사랑 덕분이라 생각한다.

이런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그러면서 우리만의 크리스마스 세리머니도 생겼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이면 이부자리도 개지 않은 채 요 위에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막 삶은 따끈한 계란에 연유를 듬뿍 쳐 달콤한 커피와 함께 먹는 크리스마스 조찬이었다. 커피란 게 귀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에게는 금기 식품이었던 터라 크리스마스날 아침에만 마실 수 있던 그 달콤쌉싸래한 커피 맛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이렇게 성장한 내가 크리스마스를 그냥 보냈을 리 없다. 나도 부모님이 내게 해주셨던 것처럼 연년생 두 아들에게 세 살 때부터 산타클로스를 가장해 선물을 주었다. 그 크리스마스 트릭은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계속됐고 아이들 역시 별 내색 없이 아버지의 이 우스꽝스러운 가짜 산타클로스 놀음을 모른 척 받아주었다. 며칠 전 확인한 것이지만 큰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작은 아이는 중학교 1학년까지 그 선물이 정말로 산타클로스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었다 하니 내 크리스마스 트릭도 그리 서툴지는 않았나 보다. 물론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삶은 계란과 커피 조찬도 가끔 즐기면서.

내가 굳이 내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를 믿게 하고 크리스마스를 행복한 사건으로 기억하도록 이렇게 오랫동안 산타클로스 역할을 해온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내 부모의 그 소박한 크리스마스 트릭이 나로 하여금 내가 평생 잊지 못할 가족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과 달콤한 꿈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갖고 싶던 선물도 받고 절대 못 마시게 하던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그런 어린 소년의 꿈….

공부차 집 떠난 아이들로 인해 아내와 단둘이 맞게 된 올 크리스마스. 헛헛한 마음을 지인이 선물한 CD의 캐럴을 들으며 달래던 중 인터넷에서 가슴 따뜻한 크리스마스 매직 스토리를 만났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어린 소년이 ‘세라’라는 이름의 누나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데 ‘산타를 만나고 싶어 하지만 아파서 올 수 없다’며 누나를 좀 찾아 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한다. 쇼핑몰의 가짜 산타는 문병을 가고 산타를 만난 세라는 기적같이 병을 이기고 약속한 대로 이듬해 크리스마스에 쇼핑몰의 산타를 보러왔다는 크리스마스 매직이다.

그렇다. 크리스마스는 꿈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모든 걸 가능케 한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 탄생의 메시지도 이 땅에 ‘희망’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평화를 이루자는. 메리 크리스마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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