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윤종]콩쿠르, 병역,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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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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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특례를 인정하는 국제음악콩쿠르가 123개에서 30개로 줄어든다는 소식이 지난달 보도된 뒤 음악계의 화제는 온통 이 문제에 쏠렸다. 기자가 만난 음악인들의 반응을 모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외국 콩쿠르에서 우승한 영재들에게 중단 없이 연습할 기회를 많이 주면 더 많은 음악가가 나중에 빛을 발할 거고, 그러면 나라에 이익이잖아요. 그게 군 복무보다 더 애국하는 거 아닌가?” “무용계와 균형을 맞추느라고 (병역특례 콩쿠르 수를) 줄였다는데, 음악인구가 훨씬 많은 건 생각 안하나요?”

얘기를 듣던 기자에게는 이 문제가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른 ‘정의’ 담론을 대변하는 것처럼 들렸다. 사실 병역만큼 한국인들의 ‘정의 본능’을 건드리는 문제도 드물다. 잘나가던 연예인을 주저앉히고, 국가의 요직에 중용되려던 인물을 끌어내리는 최악의 직격탄도 본인과 2세의 병역 문제다. 당연히 그럴 만하다.

콩쿠르의 병역특례 문제는 ‘정의’의 어떤 면을 건드리는가. 첫 사례로 든 반응은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언급한 행복의 극대화, 즉 공리주의적 정의와 공평주의적 정의의 충돌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군대에서 힘들게 훈련하고 근무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국민의 기본적 의무를 면제받으면서 자기 삶의 목표에 다가가는 데 힘을 쏟을 수 있다면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샌델이 강조하는 ‘공동선’의 이상과도 거리가 있다. 정의로운 사회는 ‘시민의식, 봉사, 희생’을 되찾아야 한다고 샌델은 말한다. 병역은 사회가 요구하는 봉사와 희생의 명확한 사례다.

그러나 이런 점만을 강조하기는 개운치 않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정의’를 따른다면 더 많은 콩쿠르의 병역특례를 인정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남자)연주가들은 중단 없이 연습을 이어나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이는 한국의 국가브랜드 향상에 도움을 주어 공공의 복리에 기여할 것이다.

한편 두 번째로 든 반응에서 보듯 문화체육관광부가 병역특례 대상 콩쿠르를 줄인 데는 ‘무용계와’ 또는 ‘체육계와의 균형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롤스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가 강조한 ‘기회균등에 입각한 정의’다. 그러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균등’의 산술적 방법론은 달라진다.

본보가 연재 중인 ‘책 읽는 대한민국’은 최근 ‘정의’를 논한 책들을 다루고 있다. 책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공통되는 점은 있다. 정의는 부동(不動)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맥락의 산물이며 다양한 가치를 끊임없이 타협시켜 산출된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팀을 세계 4강에 진출시키면 병역 면제가 당연하고 16강에 그치면 곤란한가. 절대적인 결론이 있을 수 없다. 다양한 가치가 타협한 결과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합의를 도출할 뿐이다.

정의가 그렇듯 ‘움직이는’ 것이라면 다양한 분야에서 치열한 기량 연마를 통해 국가를 빛낼 수 있는 인재들에게 병역 면제의 기회를 ‘얼마나’ 주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끊임없는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지나간 특정 조치가 잘되었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의 재검토’를 쓴 아마르티아 센도 갈등을 단칼에 해결하기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공공의 이성적 추론(public reasoning)을 이끌어내 가까운 일부터 해결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유윤종 문화부 차장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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