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주향]칠레에서 날아온 각본없는 드라마

  • 동아일보

저절로 미소가 생겼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박수를 치고 있다. 안심하지 않았기에 더욱더 훈훈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 남루해진 저 ‘희망’이란 단어가 저렇게 빛날 수 있다는 사실에 괜히 황홀했다. 그렇구나. 63빌딩을 두 채 반이나 올려놓은 것 같은 까마득한 깊이의 어둠 속에서도 생명의 노래, 사람의 노래, 희망의 노래가 터질 수 있는 거구나. 이 와중에 꼬물꼬물 태어난 광원의 딸 희망이(에스페란사)를 나도 축복했다.

마침내 작업반장 우르수아가 구조됐을 때는 눈물이 흘렀다. 마치 내 가족이 구조된 듯이. 아니, 그때 그 사람들은 내 가족이었다. 아버지이자 아들이었고 연인이자 친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잊고 있었던 우리의 본질, ‘나’ 자신이었다. 우르수아는 왜 저렇게 멋있는지. 세상은 하나였고 우르수아는 그 중심이었다. 그들은 천국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지옥에서 건설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우리의 영웅이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준 우리의 스승이었다.

지하터널이 붕괴되었다. 깊고 깊은 지하에 갇혔음을 직감한 우르수아는 광원을 모아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뭉쳐야 산다고, 우선 견디는 일이 과제라고. 그것은 지휘관의 차가운 명령이라기보다 지키지 않으면 안 될 마음의 말, 절박한 유언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오래 견디기 위해서는 식량을 아껴야 했다. 48시간마다 나눠주는 과자 한 조각, 참치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은 식량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목숨이었다.

목숨이 촌각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어찌 절망이 엄습하지 않았겠는가. 구조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갇혀 있다는 두려움, 상황은 지독히도 암담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침착했다. 일상의 힘을 되새겼다. 오락 담당도 있었고 간호 담당도 있었고 기록 담당도 있었다. 그 지옥 같고 악마 같은 상황을 기도하며 격려하며 놀며 웃으며 살며 사랑하며 극복했다. 그렇게 69일. 그들은 하루가 3년 같았을 길고 긴 긴박한 인내의 시간을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희망이 보이는 그 순간, 조급함과 기대가 한꺼번에 올라와 이기적인 판단을 한데도 뭐라 그럴 사람이 없을 텐데 우르수아는 “내가 마지막까지 남겠다”며 마지막까지 동료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대로 마지막까지 지하에 남아 동료를 올려 보내고 마지막에 구조되었다. 그와 함께한 69일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오로지 생존만이 문제인 절체절명의 긴박한 시간 속에서 그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사실을 침착하게 보여줬다. 그야말로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요인은 돈이나 명예, 권력이 아니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요인은 지혜와 사랑이다. 침착하고 지혜로웠던 우르수아는 33인의 복이고 우리의 빛이었다.

카를 융이 말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중심을 잡는 한 사람만 있다면 세상은 완벽하게 복원될 수 있다고. 누구는 광원을 구조한 것의 75%는 첨단과학의 힘이라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암담한 상황에서 인내하며 중심을 잡고 질서를 잡고 서로를 격려하며 일상을 회복해 가지 않았다면 저 첨단과학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침착한 지혜가 첨단과학을 빛나게 했다. 그들을 구한 것은 그들 자신이었고 그들이 살아옴으로써 우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는 명제의 진실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들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꿨듯 성공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은 힘도 자신 안에서 발견하게 되리라 믿는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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