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대통령에게 군가산점제 재도입을 건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논쟁은 주체와 내용, 시기 등 모든 면에서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가안보태세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안보위기 시 대비책을 마련하는 일을 주목적으로 설치된 한시적 기구였다. 천안함 사건은 초기대응에서부터 진상조사과정, 결과처리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의 위기관리시스템이 최선의 상태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전시가 아닌 상태에서 해군 함정이 침몰하는 전대미문의 상황이 국민의 커다란 안보불신으로 이어지는 일을 막은 것은 대통령의 결단력과 용기와 헌신적인 노력이었음을 국민은 잘 안다. 군이 대통령과 국민에게 커다란 빚을 진 셈이다.
따라서 군복무 기간 연장이라든가 군가산점제 부활 같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논제보다는 군의 위기대응 능력을 제고하는 논제에 집중했어야 했다. 국가안보야말로 국가존립의 제1의 이유이다. 언론 역시 문제의 핵심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했어야 했다.
군가산점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을 받아 이젠 선택 가능한 정책대안이 될 수 없다. 위헌적 요소를 제거하여 재도입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군복무에 대한 가산점 부여 자체가 헌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일차적 판단이었음을 외면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군가산점제가 제대군인에게 별 실효성 없는 상징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최근 4년간 군가선점제의 수혜자는 전체 제대군인 중 7급 공무원임용시험의 경우 0.08%, 9급 공무원임용시험의 경우 0.2%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있다. 극소수의 제대군인에게만 혜택이 미칠 뿐 절대 다수의 제대군인과 무관한 제도이다. 소리만 요란하지 빈껍데기에 불과한 셈이다.
군복무 기간 연장과 함께 군가산점제를 재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군복무 기간 연장의 효과는 매년 약 25만 명 상당의 제대군인 전원에게 미친다. 수혜대상이 매년 제대군인의 1%에도 못 미치는 군가산점제와 교환할 수 있다고 믿으면 너무 순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군가산점제를 전면에 내세워 군복무 기간 문제를 비켜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양자는 별개 문제로 다뤄야 한다.
시기적으로도 군가산점제 논의는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지금 정부는 공정한 사회를 국정운영의 화두로 잡았다. 공직임용과정에서 드러난 특혜시비로 촉각이 곤두선 상태이다. 군가산점제는 취업 기회가 극도로 부족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군가산점제가 누구나 균등한 기회를 약속받는 공정한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겠는가.
군복무자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 필요하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군가산점제는 그러한 보상방안 중의 하나일 뿐인데 위헌적이어서 용도가 폐기됐다. 극소수의 제대군인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군가산점제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논쟁으로 연결되어 다른 합리적 대안논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는 일은 절대 다수의 제대군인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극소수의 수혜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징적인 조치 말고 전체 군복무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가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지원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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