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재창]추석 민심 잘 들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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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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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연인원 기준 5000만 명 가까이 이동한다니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표현대로다. 귀소본능 때문이라고도 하고 유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라고도 하지만 도시화율이 아시아권 최고라는 점에서 도시가 채워주지 못하는 살냄새, 사람맛에 대한 외마디 같은 호소이지 싶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도시의 단절이 불러오는 외로움과 억눌림에 대한 정서적 탈출을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분출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귀성, 소통과 경계넘기의 출발점

많은 사람이 고향 품에 안겨야 비로소 속내를 꺼낸다고 말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직 우리가 초급 민주주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도시의 허위의식을 벗어나 진실과 조우할 수 있는 이유가 언제나 알몸인 시골의 처연함 때문만은 아니다. 도시의 빈들에 혼자 남겨진 상처가 가족과의 상봉을 통해 끈끈한 연대와 소속감으로 회복되는 순간 도시인들은 도시로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와 기력을 찾는다. 이렇게 보면 귀성은 거대한 소통과 경계 넘기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추석이면 정치인의 민심탐방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일상처럼 되었다. 정치권은 고향에서 털어놓는 속내의 공감대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파급력이 만만치 않음을 걱정하는 눈치다. 평소 민심의 소재를 찾는 데 태만했다는 사실이 이들을 벼락치기 서민공부로 내모는 것일까. 도시와 농촌, 지도자와 일반시민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면 구태여 추석에 민심을 따로 탐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쨌든 귀성하는 정치인의 가방에는 이제 연휴 동안 벼락치기라도 해서 얻어들은 민심의 목소리가 가득할 것이다. 사회적 우등세력에는 기회의 공정이 선이지만 열등세력에는 결과의 공정만이 복음이라는 것쯤은 이제 고향의 어르신도 잘 안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는 단군 이래 호황이라고 하지만 서민경제의 곤궁함은 휜 허리 한번 펴볼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도 들었을 것이다. 청년백수의 눈에는 4대강 위를 떠다닐 것이라는 유람선이 유령선처럼 보인다는 주장도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님을 깨달았기 바란다.

이제 가방을 열어 해결책을 찾는 일이 정치인에게 과제로 남겨졌다. 민심을 있는 그대로 국정에 반영하라는 주문은 그것이 정치인 책무의 전부라는 뜻이 아니라 단지 출발점이며, 그런 까닭에 최소한이라도 잘해보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를 단순히 국정에 반영하는 일이라면 정치인말고도 수행할 사람이 적지 않다. 언론이나 여론조사가, 시민사회운동가, 외국의 경우 로비스트나 옴부즈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대정신 고민하며 해결책 모색을

정치인이 이들과 달라야 하는 점은 자신의 지도력을 통해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이를 토대로 민심의 소재에 귀 기울인 결과를 재해석하고,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 점이 정치적 지도력과 여론 추수주의를 구분하는 잣대다.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이런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력이나 비전이 마련되어 있느냐이다. 이런 눈을 갖추지 않고 민심탐방에 나선다면 해답을 구할 수도, 정파 간 이해타산을 넘어설 수도 없다.

시대는 이미 일국주의의 경계를 넘어 지구 경영의 관점과 세계관에 따라 대응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에 도달했다. 일국주의의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한 채 누구 논에 먼저 물댈 것이냐 식의 문제만을 논한다면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정치인의 열린 시야가 바닥의 민심과 만날 때 당면한 사회정책 과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 정치인들이 이런 깨달음을 이번 추석 고향에서 받아온 선물로 삼았으면 한다.

박재창 숙명여대 정치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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