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정원을 누리는 인생

동아일보 입력 2010-09-11 03:00수정 2010-09-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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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연못, 조새별 그림 제공 포털아트
많은 사람이 정원을 갖고 싶다고 말합니다. 참 아름다운 소망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정원은 집의 다른 개념입니다. 정원이 아니라 그것이 딸린 집을 갖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냅니다. 그와 같은 표현을 통해 우리는 정원이 공간 개념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집을 짓고 남는 여분의 공간에 정원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요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원은 곧 물질의 공간을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집이 없고, 집이 없으면 정원도 없습니다. 정원이 있는 집이냐 정원이 없는 집이냐에 따라 집의 품격도 달라집니다. 백만장자가 엄청난 돈을 들여 꾸민 아름답고 세련된 정원과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이제는 아파트에도 실내정원과 베란다 정원이 탄생하는 실정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 옥상에도 정원을 만들고 지하공간에도 정원을 만듭니다. 정원이 현대적 삶의 중요한 형식적 요소임을 강조하는 사례입니다.

정원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분류됩니다. 하나는 가꿈의 대상이 되는 정원이고 다른 하나는 꾸밈의 대상이 되는 정원입니다. 꾸미는 정원은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고 가꾸는 정원은 자신을 위한 공간입니다. 사소한 차이 같지만 거기에는 인생의 의미를 달리 생각하게 만드는 본질적 차별이 존재합니다. 인생을 오직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겉치레만으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정원과 인생은 등가 관계를 형성합니다. 정원이 사람이고 사람이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문제의 본질이 분명해집니다.

사람=정원. 정서적인 측면으로 관찰할 때 사람은 정원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사람은 정원이라고 선언적으로 말한다 해도 모든 요소가 맞아떨어집니다. 정원의 본질은 꾸밈이 아니라 가꿈에 있다고 말할 때 이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돈이 아니라 감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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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은 10대나 20대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나이가 들면 엄청난 차별성의 근거가 됩니다. 감성을 잘 가꾸며 나이가 든 사람은 스스로 향기로운 정원이 되지만 감성을 무시하고 황폐하게 만든 사람은 정원 대신 사막 같은 가슴을 지니게 됩니다. 감성은 물질적 재화가 아니지만 사람의 격을 결정하는 무서운 요소가 됩니다. 어마어마한 대저택과 대정원을 지니면서도 인격적으로 황폐한 사람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내면의 정원을 오래 가꾼 사람은 인생이 한마당 정원임을 압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 하나 하나를 소중한 꽃나무처럼 가꾸고 자기 삶의 환경도 소중하게 가꾸어 나갑니다. 그들이 지닌 세상에 대한 경외감이 세상으로부터 경외감의 대상이 됩니다. 그것은 재력과 무관하고 권력과 무관합니다. 스스로 정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삶, 그것은 많은 사람과 자신을 나누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홀로 누리는 대정원의 쓸쓸함과 외로움보다 소박한 마음의 정원에 지친 사람이 찾아와 편안하게 쉬어가는 풍경이 훨씬 아름답습니다. 그런 정원을 가꾸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감성뿐이고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점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그대 마음의 정원에는 지금 무엇이 자라나요.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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