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연욱]세대교체 vs 시대교체

동아일보 입력 2010-09-01 03:00수정 2010-09-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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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출발은 화려했다. 8월 8일 소장수 아들이 국무총리가 됐다는 소식은 꿈이 사라진 요즘 세태에 가뭄 속 빗줄기 같은 활력소가 될 만했다. 48세의 패기를 앞세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세대교체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정치권은 정치판의 신데렐라 등장에 긴장했다. 특히 여권의 각 후보 진영은 ‘김태호 바람’의 풍향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추락

추락엔 날개가 없었다. 24, 25일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선 김 후보자의 답변 태도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은 고개를 저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 만난 시점을 집요하게 파고든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김 후보자는 청문회 첫날 “2007년 이후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의 답변은 불과 하루 만에 바뀌었다. 박 전 회장과 2006년 가을에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자 “정확히 기억을 못 했다”며 전날 답변을 뒤집어야 했다. “골프 한 번 쳤다고 절친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지만 젊은 세대다운 솔직함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참신한 정책 비전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8월 29일 자진 사퇴했다. 총리에 지명된 지 불과 21일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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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분명 정치권에도 신데렐라가 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청문회의 종소리가 땡 하고 치자 신데델라는 재투성이 아가씨가 되어버렸다. 한편으로 여야는 정치권에 신데렐라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썼다.

김 전 후보자는 분명 정치권의 신데렐라였다. 신데렐라의 동력은 세대교체 바람이었다.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40대 총리가 파격 발탁된 것은 39년 만이라는 상징성도 관심을 끌어올렸다. 8·8 개각을 주도한 청와대 인사들도 이 점에 주목했다. 개각 직후 청와대 관계자들은 김태호 카드의 정치적 반향에 뿌듯해했고, 한나라당 친박(친박근혜) 진영은 “박 전 대표를 견제하려는 음모”라며 흥분했다.

‘김태호발(發)’ 세대교체의 바람은 불었지만 채 한 달을 버티지 못했다. 신체적 나이를 기준으로 세대를 가르는 일차원적 접근 탓이다. 정치적 내실이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신선한 바람은 지속될 수 없다. 세대교체가 시대변화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할 경우 모래 위 누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는 이를 ‘시대교체’라 부르고 싶다.

5월 영국 총선에서 집권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44세’라는 프리즘에서만 본다면 세대교체의 착시(錯視) 현상에서 헤어날 수 없다. 그가 영국 보수당을 이끌 차세대 스타로 급부상한 계기는 2005년 9월 ‘보수당의 미래’를 주제로 한 연설이었다. 이에 힘입어 그해 말 39세로 보수당 당수에 취임할 수 있었다. 캐머런 총리는 보수적 이념에 집착하지 않고 ‘따뜻한 보수주의’를 표방했다. 경제적 부유와 복지의 동반 향상을 내건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해 정치적 ‘공인’을 받았다.

김 전 후보자의 낙마는 정치권에 새로운 도전의 메시지를 던졌다.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비전을 내놓고 국민을 설득하는 정치력이 정치적 승패의 결정적 변수임이 분명해졌다. 특정 정파나 지역, 세대에만 기대는 낡은 패러다임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 ‘민심의 시장(市場)’은 일시적으로 흔들릴 순 있어도 평가는 냉정했다. 세대교체가 아니라 시대교체의 함의를 읽어야 할 때다.

정연욱 정치부 차장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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