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통일 위해 돈 낼 준비 되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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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9일 03시 00분


18일 낮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인근 식당에 삼삼오오 마주앉은 손님들의 화제는 단연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통일세’였다. 기자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보니 전날도 전전날도 통일세는 기자를 포함한 온 국민의 밥자리, 술자리를 휩쓴 주요 화제였던 것 같다.

문득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재임 중 노 대통령은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2004년)에 이어 대(大)연정과 동북아균형자론(2005년), 좌파 신자유주의(2006년) 등 다양한 화제와 화두를 만들어내며 온 국민의 밥자리, 술자리를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다. 노 대통령이 깔아놓은 공론의 장에서 많은 국민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성에 따라 갑론을박했다.

이 대통령의 통일세 징수 제안도 그렇다. 통일세 징수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북한과 한반도 분단, 통일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희망을 드러내는 끝장 토론에 빠지는 것 같다. 정치 9단인 노 대통령에 비해 정치적 감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기업인 출신 이 대통령으로서는 ‘한 건’ 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제안에 말들이 많지만 기자는 분단국가의 최고통치자로서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적 화두를 던진 통치행위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화두의 폭발성은 언제 올지, 과연 나에게 이익이 될지 알 수 없는 통일이라는 추상적인 가치 목표를 ‘나와 내 가족’의 돈주머니가 줄어드는 구체적인 수단(세금)과 연결시킨 데서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신은 통일을 원합니까? 그것을 위해 생명과도 같은 재산을 내놓을 의사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온 국민에게 던진 셈이다.

우리가 지금 통일을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 현대사는 60여 년의 분단이 한민족의 삶을 어떻게 제약하고 왜곡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분단의 불행을 언제까지나 대물림할 수는 없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와 3대 세습 등 북한 내부의 불안은 커지고 있어 갑작스러운 통일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등 주변국은 한반도 통일보다 남북이 나뉘어 싸우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을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이끌면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우리가 주도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나는 통일을 원한다. 이를 위해 돈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때다. 공짜 통일은 없다.

신석호 정치부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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