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허승호]공 존 ― 동아일보의 제언

  • Array
  • 입력 2010년 8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보수란 무엇이며 진보란 무엇인가. 기자는 이렇게 구분한다.

보수: 자유주의·개인주의 세계관. 창의성에 대한 인센티브 강조. 자유경쟁과 시장의 효율에 대한 신뢰. 빈곤 문제의 장기적·근본적 해법은 성장이라는 믿음. 자유무역 지지. 정부의 실패(비효율, 부패, 자의성 등)에 민감. 작은 정부(재정축소, 감세, 민영화, 탈규제) 선호. 이기적 인간관. 변화에 신중한 태도.

진보: 공동체주의 가치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 사회안전망 중시. 복지와 형평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 강조. 누진세제. 재정 기능 확대. 유치산업 보호. 시장실패(독과점, 불공정거래, 부익부빈익빈, 공유자원 남용, 공황 등)를 보완하기 위한 개입 필요성 인식. 인간의 선의(善意)를 신뢰. 과감한 변화 수용.

현실정책은 성장-복지의 매트릭스

매우 대조적이다. 하지만 순수한 이념형(Idealtypus)에서나 그럴 뿐 현실정책에서는 좌우의 경계선이 선명치 않다. 정책은 결국 성장과 복지의 교직(交織)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자유를 도외시할 진보정부는 없고, 평등을 내팽개칠 보수정부도 없다. 시장주의적 해석이 좀 더 설득력을 얻는 시대상황이 펼쳐지면 보수세력이 집권해 자유주의 색채가 더 들어간 정책을 짜는 것뿐이다.

좌우는 그렇게 공존한다. 게임의 절차와 룰을 지키면서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하며 경쟁하는 것이다. 그게 정상(正常)사회이며 우리가 갈 길이다. 이것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한민국, 공존을 향해-통합을 위한 동아일보의 제언’ 시리즈의 취지이기도 하다.

한때 공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있었다. 정통성 없는 정권의 폭압적 통치로 시민의 인권이 짓밟히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등 민주적 절차가 작동하지 않던 때였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불의에 대한 희생적 투쟁’이 요구되던 상황이었으며, 정권은 타도의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민주화로 룰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문제는 한국의 보수-진보는 여전히 찢어져 사생결단식 투쟁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숙과 내적 취약성 때문일 것이다.

미성숙의 특징은 정치과잉, 이념과잉이다. 모든 사안을 이념의 프레임에 가두며, 상대 정책은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것이다. 진보가 왜 수도 분할에 찬성해야 하는지, 보수가 왜 치수(治水)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는지 아무리 사상사(思想史)를 뒤져봐도 알 수 없지만 한국의 좌우는 그러고 산다.

내적 취약성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파는 산업화와 압축성장의 당당한 주역이지만, 아직 토착비리-수구꼴통 세력이 여기저기 뒤섞여 있다. 보수정당의 대표 한나라당은 군부독재 반민주 세력, 정경유착 부패 세력에 뿌리가 닿아 있다. 본인과 자식이 군대에 안 간 경우는 왜 그리도 많은지…. 우파가 살려면 이런 부패·특권의 악습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썩은 右翼, 거짓 左翼으론 못 난다

진보도 심각하다.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PD수첩 보도는 거짓’임이 며칠 만에 드러났지만 이미 도심을 점거한 이들에게 사실관계는 중요치 않았다.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기 싫었고 MB정권을 타격하려는 마음뿐이었다. 천안함 폭침 때 유엔 결의에서 ‘북한의 책임’이 적시되지 않은 것은 증거 부족 때문이 아니라 강대국 간 국제정치적 이해절충의 결과임을 뻔히 알면서도 “봐라, 이러니 정부를 못 믿지”라며 강변했다. 도덕성을 최대의 무기로 해야 할 진보가 정치적 이익에 눈멀어 번번이 진실을 외면한 것이다.

새가 날려면 두 날개가 필요하다. 그러나 날개가 둘 있다고 다 잘 나는 것은 아니다. 부패한 우익, 거짓말하는 좌익으로는 아무리 퍼덕여도 비상(飛翔)할 수 없다. 날개의 종양을 방치하면 종내 몸통까지 위험하다. 공존은 아름답다. 하지만 썩은 보수, 거짓 진보로는 공존도 포용도 할 수 없다. 공존에 앞서 생존을 위해서라도 돈오(頓悟)적 각성이 필요하다. 좌와 우가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원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승호 편집국 부국장 tiger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