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송의영 ]부동산보다 경제 안정이 우선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4일 03시 00분


직진하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똑바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운전자가 핸들을 끊임없이 미세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면의 굴곡과 경사가 계속 변해 운전자가 자동차의 쏠림을 수정해주지 않으면 자동차는 차선을 이탈한다. 한쪽 바퀴의 바람이 빠져 있다면 운전자는 핸들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잠시만 놓쳐도 자동차는 중앙선을 넘거나 가드레일을 들이받을 수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활성화 대책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요 신문에서 정부의 우유부단을 꾸짖는 기사와 칼럼이 주류를 이루는데 필자는 정부의 좌고우면(左顧右眄) 장고(長考)를 탓할 생각이 없다. 부동산 정책은 그만큼 중심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주택자들은 주택 가격 하락이 왜 ‘문제’가 되는지, 왜 여기에 ‘대책’이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장기전세주택이니 보금자리주택이니 하는 ‘친서민’ 주택정책의 효과가 이제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정부가 의도한 정책의 결과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니 야릇하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주택을 보유한 가구는 총가구의 70%에 근접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택 가격의 하락은 주택 보유자들을 분노하게 만든다. 정부가 국민 다수인 주택 보유자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이들은 정권의 베이스캠프를 이루고 있다.

집값부양 주장의 이상한 논리

정부는 가격은 하향 안정화하면서 거래는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신기한 마술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시장은 거래 활성화를 외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정 원하는 것은 아파트 가격 부양 정책이다. 명분은 아파트 가격의 급락을 방지하여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주장하는 일부 전문가의 논리가 묘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2000년대 중반 서울의 강남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주택 가격의 폭등이 규제로 인한 공급 부족 때문이었으며, 주택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을 여지는 거의 없다고 주장해왔다. 주택 가격에 거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택 가격이 소득, 금리, 공급량과 합리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급이 증가하고 금리가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주택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하락하는 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토록 주장했던 공급 증가를 억제하고 금리를 비정상적인 수준에 묶어놓으면서까지 주택 가격의 하락을 방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택 가격에 거품이 없다면 가격의 급락을 염려할 필요 또한 없다. 그러니 ‘주택 가격의 급락을 방지하기 위하여’라는 논리를 펴려면 현재의 주택 가격에 상당한 거품이 끼어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를 전개하는 이들은 1980년대 말 일본에서 금리의 급상승이 거품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던 사건을 각인시킨다. 이는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경고다. 앞으로 금융통화위원회가 추가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이에 따라 주택 가격이 급락하여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그 책임을 금통위에 묻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에도 묘한 논리가 있다. 존경 받는 경제학자 중에 일본 거품 붕괴가 1989년 금리 상승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이는 없다. 주택 가격에 큰 거품이 끼어 있다면 이는 언젠가 터지게 되어 있다. 만일 거품이 붕괴해 금융위기가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방만한 금융·통화 정책을 운용해 거품을 유발했던 과거 정부의 몫이다. 현 정부가 할 일은 거품 붕괴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규제완화보다는 세제개편을

또한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 주택 가격 급락으로 국가의 금융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는 메뉴에서 빼야 한다. 소득에 비해 이자부담이 커서 대출을 받지 못하다가 DTI 규제 완화 덕분에 주택을 구입하는 가계는 금리 상승에 가장 취약한 가계다. 금융 불안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건전성을 희석시키자는 주장은 어리석다.

신용이 과다하게 풀려 있고 물가 상승 압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점진적인 금리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과다한 가계대출이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에서 초저금리와 대출규제 완화로 가계대출을 자극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경제의 핸들 역할을 하는 금리와 금융감독이 강력한 산업과 기득권의 포로가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쓰라린 경험이 이를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주택시장의 연착륙 유도가 필요하다면 부동산 세제 개편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현명하다.

송의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경제학 eyso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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