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이덕환]월드컵 족집게 예언도 확률의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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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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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오버하우젠의 해양생물수족관에 있는 파울이라는 문어가 세계적 스타가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독일이 참가했던 7경기의 승패를 정확하게 알아맞혔고 그것도 모자라서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승리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한다. 8경기 승패 모두를 정확하게 알아맞힐 확률은 0.39%라고 한다. 흥분한 세계의 축구 팬이 파울을 ‘진정한 월드컵 MVP’라고 치켜세우면서 법석을 떠는 모양이다.

한두 경기라면 몰라도 8경기를 모두 맞혔다는 일이 신기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문어잡이 배의 어창에서 살아있는 평범한 문어 256마리를 임의로 선택해서 수족관에서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8번의 경기 결과를 물어보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중 한 마리는 파울과 같은 능력을 가진 듯이 보일 가능성이 높다. 확률 0.39%는 평균적으로 256마리 중 1마리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문어들을 대상으로 똑같은 실험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 어떻게 될까? 이번에도 역시 한 마리의 문어가 별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문어는 처음과는 다른 문어일 것이다. 그런 실험을 수없이 반복해 보면 결국 256마리의 문어가 모두 탁월한 재능을 가진 듯이 보일 것이다. 적어도 확률적으로는 그렇다. 사실은 굳이 문어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개미나 지렁이에게 물어보더라도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또 있다. 출근길에 앞차의 번호가 ‘5365’일 확률은 파울이 8경기의 승패를 모두 알아맞힐 확률보다 훨씬 작은 0.01%이다. 확률로만 본다면 월드컵 문어의 경우보다 훨씬 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기적이 일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앞차의 번호가 ‘3556’일 확률도 역시 0.01%이기 때문이다. 사실 앞차의 번호가 어떤 번호이거나 상관없이 누군가가 바로 그 번호를 가진 차를 뒤따라갈 확률은 언제나 0.01%이다. 그런 일이 기적이라면 우리는 매일 아침 수없이 많은 기적을 경험하는 셈이다.

이번 소동은 확률과 통계에서의 착시 현상을 교묘하게 이용한 상술에 전 세계의 언론과 누리꾼이 정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황당한 일이다. 영국 독일 미국 등 10여 개국에서 수족관을 운영하는 기업이 막대한 홍보 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FIFA에 후원금을 내지 않고 성과를 얻었으니 탁월한 홍보 전략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런 홍보 전략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FIFA에 엄청난 후원금을 내고도 기대했던 홍보 효과를 얻지 못한 기업이 배가 아팠을 수는 있다.

확률과 통계의 착시가 문어의 경우처럼 언제나 선의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국가나 기업의 정책 수립 과정에 착시가 개입되면 수많은 사람이 엄청난 피해를 본다. 외환위기도 그렇고 미국발 금융위기도 그런 착시와 무관하지 않다. 판사나 의사가 착시에 빠지는 경우도 위험하다. 학생들이 목숨을 거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사용하는 표준변환점수가 정말 통계적으로 의미가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확률과 통계는 모든 분야에서 과학적 상황 파악과 합리적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통계를 이용한 여론조사가 민주적 선거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엄격한 자연법칙이 적용되는 자연에 대한 통계적 분석에서는 예외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에 대한 통계적 분석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확률과 통계를 무작정 믿을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 화학 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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