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직장을 그만둔 A 씨는 퇴직금을 털어 서울 신촌에 조그만 옷가게를 차렸다. 처음 몇 달간은 손님이 제법 들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임차료도 못 낼 상황이 됐다. 은행에 대출을 신청했지만 담보가 없고 신용등급이 낮아 거절당했다. 사채라도 빌릴까 고민하다가 이자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 끝에 점포를 정리했다. 금융위기 이후 주변에 A 씨 같은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위기를 겪으면 사회의 중심축인 중산층이 약화되고 빈곤층이 늘어난다. 실제로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나빠지는 등 경제 양극화가 심화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최근 주요 경제지표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경영실적도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하지만 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냉랭하기만 하다. 경제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지갑을 닫고 소비를 줄인다. 사람들이 지갑을 닫으면 자영업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두 배나 높은 우리나라의 서민경제가 받는 충격이 훨씬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지난해 말 출범한 ‘미소금융’ 사업은 금융위기로 금융기관의 서민대출이 위축된 상황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이다. 서민을 위한 금융서비스 차원을 넘어 제2의 사회안전망으로서의 든든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된다. 과거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은 극빈국가의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경제 양극화 해소에 기여한다. 미소금융이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완할 점이 있다.
첫째, 서민의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서민이 손쉽게 서비스를 받도록 전국 250여 기초자치단체의 청사에 미소금융 상담창구를 무상 임대하여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대출재원 조달 통로를 다각화해야 한다. 휴면예금과 기업·은행의 기부금 외에도 국민의 소액기부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억만장자 기부운동도 국내에서 부유층과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나타날 필요가 있다.
셋째, 서민의 다양한 자금 수요에 맞는 대출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음식점 업주가 솥단지 시위를 하고 화물차주는 물류를 중단하는 파업을 벌여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음식점 업주 및 화물차주의 세금을 깎아주는 식으로 수습했는데 이들에게 적합한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공했다면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넷째, 미소금융의 성공을 위해서는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전문성이 있는 자원봉사자 확보가 절실하다. 최근 발대식을 가진 ‘미소희망봉사단’에 금융업 퇴직자나 대학생 등 많은 사람이 적극 참여함으로써 각자의 재능과 지식을 제공했으면 한다.
경제 양극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숙명적인 약점이다. 각자의 돈과 재능과 지식을 소외된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기부문화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극복하고 사회 통합을 이루는 대안이다. 그리고 한국형 마이크로크레디트인 미소금융은 대안의 훌륭한 실천방안이다.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 총재는 “소액융자는 우리 인간이 가진 꿈을 일깨움으로써, 가난한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과 존중의 마음을 갖도록 만들고 스스로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미소금융 사업이 제2의 사회안전망으로 굳건히 뿌리내려 사회의 갈등 완화와 국민 통합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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