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위원회 좌담/6·2 지방선거와 여론조사]“유선전화 여론조사 근본적 재검토 필요”

  • Array
  • 입력 2010년 6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신문사 컨소시엄 만들어
여론조사 실시할 수도”

“재판 진행중인 후보자
언론서 사전검증 소홀”

“‘압도적’ ‘독주’ 같은 제목
여론 향방 오도할수도”

《시도지사, 교육감, 시군구청장, 시도 및 시군구 의원, 교육의원을 뽑는 6·2지방선거가 2일 실시됐다. 3991개의 자리를 놓고 9914명이 다툰 이번 선거는 언론에 몇 가지 과제를 안겨 줬다. 워낙 많은 후보자가 출마한 탓에 그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뿐 아니라 선거 과정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부정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2일 ‘6·2지방선거와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이번 선거는 ‘예상 밖’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흥미로운 결과를 많이 나타냈습니다. 언론으로서는 공약 및 인물 검증에 소홀함이 없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동아일보는 광역단체장 중심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메니페스토 평가단’을 구성해 공약 검증은 나름대로 충실히 했습니다. 그러나 중계방송을 하듯 선거현장을 쫓아다니면서 하는 보도가 아직은 상당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유권자들이 공약을 따지고, 정책을 따질 수 있도록 충실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정성진 위원장=교사들의 인사, 학생 복지, 전교조 문제는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이런 것들을 책임질 뿐 아니라 공교육의 방향이나 내용을 조타(操舵)하는 교육감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미흡했던 것은 반성해야 할 대목입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윤리강령에서 ‘아주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사실을 생략하는 보도는 공정하지 않으며, 또 중요한 사실을 희생시키고 별 관계가 없는 정보를 포함시키는 보도 역시 공정하지 않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윤영철 위원=미디어 환경이 바뀐 결과가 나타났다고 봅니다. 유권자 1명이 8명이나 뽑는 지방선거에 언론이 정보 제공 매체로서 적합한가를 짚어 보아야 합니다. 정책적 특색이 지역마다 다른 상황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선거 정보를 얻는다는 건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처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매체가 연계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민웅 위원=인물 검증은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불공정 보도 시비에 휘말릴까 봐 못 했다면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공정성의 하위 개념인 ‘중립성’을 잘못 해석한 겁니다. 진실을 파헤치고 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중립의 자세로 접근하되 진실이 파악되면 그 토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적극적 중립성의 원칙’을 간과했습니다. 이광재 강원지사 후보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후보가 당선했을 때 직무가 정지되고 심지어 보궐선거가 실시될 수 있다는 점을 충실히 보도하지 않은 것은 공정보도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진실보도마저 훼손한 사례로 꼽힐 만합니다.

정 위원장=지방자치단체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확정되지 않았을 때 부단체장이 권한을 대행하도록 한 지방자치법 111조와 관련해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후보자가 당선됐을 때의 문제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특정 후보가 누구든 그걸 밝히고 아울러 그런 조항이 2005년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4(합헌) 대 4(위헌) 대 1(소수의견)로 기각된 사실도 밝힘으로써 쟁점화해야 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쟁점인데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명하지 못한 것은 언론이 반성해야 합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주민의 이익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도 중도적인 심층보도가 필요합니다.

이 위원=ICBM이라는 후보 검증 방법이 있습니다. 성실성(Integrity), 능력(Competence), 행적(Behavior), 도덕성(Morality)을 중심으로 검증하는 것입니다.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까 봐 소홀히 할 수 있는데 후보자의 과거 행적도 살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병역을 기피한 행적이 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며 ‘병역의무 강화’를 들고 나오면 의심의 눈초리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닷컴에서는 지지층과 이슈가 비교적 극명하게 갈리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총선거에 비해 그다지 큰 논쟁거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온라인의 특성을 살려 자치단체장 및 의원, 교육감, 교육의원 등 모든 후보의 프로필과 공약을 서비스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판단을 도울 기본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언론은 선거 기간에 경쟁적으로 여론조사를 했으나 그 결과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데는 모자람이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와 많은 차이를 보인 여론조사와 그 보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최 스탠더드에디터=이번 선거 결과를 보고 어떻게 이처럼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했는가 싶어 두렵고 참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론조사기관은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조사할지, 언론은 그 조사 결과를 어떻게 보도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윤 위원=전화여론조사가 정확한 여론을 알 수 있는 조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유선전화를 쓰지 않는 젊은 세대는 샘플링 자체에서 배제됐을 수 있습니다. 또 여론조사에 응한 사람들에게서 마약중독효과(narcotizing effect)가 나타난 건 아닌지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약중독효과는 1950, 60년대 미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인데 ‘누굴 지지하느냐’는 식의 여론조사에 응한 사람들이 ‘나는 여러 번 의견을 밝히며 정치 과정에 참여했는데 굳이 투표장에 갈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식으로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행위를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위원=전화로 하는 여론조사, 특히 유선전화 조사는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기본적으로 방문조사를 해야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듭니다. 최소한 휴대전화로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휴대전화로 하려면 개인정보보호 문제로 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부 선진국에서처럼 성별, 연령별, 학력별 등으로 원칙에 따라 패널을 구성해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방법은 패널 선정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듭니다. 그러나 한번 해 놓으면 조금씩만 보완하면 되며 비용 등을 고려해 미국처럼 신문과 방송이 공동으로 조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출구조사를 한 것처럼 몇몇 신문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우리나라에서 선거에 여론조사가 본격 도입된 건 1987년 대선 때부터입니다.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제대로 맞히는 편인데 총선이나 지방선거처럼 지역단위 선거에선 거의 다 틀렸습니다. 이번에 전화여론조사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언론은 항상 그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해 놓고 그때마다 ‘이변’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에겐 이변이 아닙니다. 언론이 제대로 읽지 못한 거죠.

윤 위원=보도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15%포인트 격차가 나면 그냥 ‘15%포인트 차’라고 해야지 ‘압도적’, ‘독주’ 식으로 표현하는 건 잘못입니다. ‘여당이 압도적이고 독주한다는데 나라도 야당 찍어서 견제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정서도 생겼을 수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여론의 향방을 읽어야 하는데 견제심리와 역풍을 일으키게 되는 셈입니다. 또 당락 예측뿐만 아니라 각 지역 특유의 어젠다와 이슈, 해결책 등을 조사하면 보도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정 위원장=선거 결과가 나온 뒤에 여론조사의 문제점이 다 드러났는데 언론이 미리 여론조사의 허와 실, 제도나 운영상의 문제점 같은 것을 지적해 독자를 일깨워 주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합니다. 또 선거보도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인사 비리, 인허가 비리, 민관 유착이라든지 교육계의 이념 지향성같이 ‘주제가 있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심층보도를 더 많이 기획했더라면 지방자치제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계기도 되고 독자에 대한 서비스도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참석자>

○ 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 위원

이민웅 한양대 명예교수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장

최영훈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김동철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박태서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명식 미디어연구소 소장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