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쟁 안 겪은 세대일수록 6·25를 알아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5일 03시 00분


모든 국민이 자유와 번영의 근원을 깨달아야
스스로 대한민국 안 지키고 누구한테 기댈 건가

60년 전,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밤 서울 용산에서 채병덕 총참모장을 비롯한 육군 수뇌부가 주요 부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육군장교구락부 개관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25일 새벽까지 술과 댄스를 즐겼다. 국군 장병 3분의 1은 주말을 맞아 외박과 휴가를 나갔다. 대취한 육군 수뇌부가 비몽사몽(非夢似夢) 작취미성(昨醉未醒) 상태에서 헤매고 있을 때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은 북위 38도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했다.

광복 후 진주한 미군이 1949년 철수한 뒤 전쟁에 대비하지 못한 국군은 낙동강까지 패퇴를 거듭해 자유 대한민국은 훅 불면 꺼져버릴 촛불 같은 처지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즉각적인 침략 규탄과 유엔군 파병 결정, 21개국의 참전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은 김일성 치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통합돼 질곡의 60년을 지내야 했을 것이다.

6·25전쟁 3년 동안 국군 15만2000여 명, 유엔군 3만7000여 명(미군 3만3000여 명 포함)이 전사했다. 오늘 5000만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유엔군과 우리 국군이 흘린 피의 대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의 수호자’들이 없었다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가능했겠으며, 오늘의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외칠 수 있겠는가.

젊은 세대 가운데는 6·25가 언제 일어났는지, 누가 도발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시대착오적 종북(從北)좌파들은 6·25를 ‘통일전쟁’이나 ‘민족해방전쟁’으로 해석한다. 북한이 주장한 북침설과 좌파 수정주의 학자들이 한때 내세웠던 ‘남북 교전 중 발발설’은 1990년대 옛 소련의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소련의 승인과 지원을 받은 남침임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바람에 설 자리를 잃었다. 정부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6·25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깨우쳐 주는 교육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체성 바로 세우기와 직결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6·25와 천안함 폭침 상황은 안보태세의 해이라는 점에서 빼닮았다. 1950년 초 북한이 경계 태세를 떠보기 위해 빈번한 도발을 해오자 국군은 세 차례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정작 북이 남침준비를 완료한 6월 23일에는 ‘특별한 징후가 없다’며 비상경계령을 해제했다. 군 수뇌부가 결정적으로 안이한 판단을 한 것이다. 합참은 작년 11월 대청해전 이후 북의 보복 가능성에 대비하라고 해군에 지시했다. 해군은 귀담아듣지 않았고, 합참도 이행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천안함은 침몰 2, 3일 전 북 기지에서 잠수정 3척이 사라졌다는 정보를 전달받고도 백령도 해역에 그대로 머물렀다.

북의 적화통일 야욕은 6·25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 2012년 4월 17일 예정대로 한미연합사 해체 및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이뤄진다면 북한이 쾌재를 부를 일이다. 국가안보에 한 치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한미동맹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6·25 남침 직후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한 작전지휘권(1950년 7월)과 미국과 싸우다시피 해서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1953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창설에 앞장선 한미연합사(1978년) 체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미국 의존형 방위개념은 2020년 이후 실질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자주국방을 준비하고 북의 급변사태와 남북통일에 대비해야 할 무거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도발세력을 언제든지 단호히 응징할 수 있는 국방력과 전체 국민의 확고한 안보의지가 살아 있어야만 평화를 지킬 수 있다. 군인들의 입에서 “전쟁은 싫어요. 돈을 줘서라도 북한을 달래주세요” 하는 소리가 튀어나오고, 군대 기피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세태가 만연한다면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어렵다.

6·25 참전 용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거나 생활이 어려운 부상자와 가족들을 보살피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북한에 생존해 있는 500여 명의 국군 포로를 귀환시키는 일도 끝까지 포기할 순 없다.

6·25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통일 역시 북한이 남침을 통해 의도했던 공산화 통일이 아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한 통일이어야 함은 너무 당연하다. 주민을 굶주림 속에 몰아넣고 핵 개발로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 김정일 독재체제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는 것은 우리 세대에 부과된 사명이다.

뼛속 깊이 파고든 상처도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면 아물어 새살이 돋고 고통의 기억마저 흐릿해지는 법이다. 그렇지만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후예들이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6·25는 결코 잊혀진 전쟁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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