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주영]승패는 잊어라, 하나되어 달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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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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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 다시 가슴이 달아오른다

짙푸른 하늘에 바람도 없는 날 오후, 물결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오리 떼를 바라본다. 분명 헤엄치고 있으나 유리벽 위로 미끄러지듯 유연하기 짝이 없는 오리 떼의 유영은 감탄할 만하다. 그러나 호수 속에 누워서 오리 떼의 유영을 올려다 볼 수 있다면 감탄은 배가된다. 물 위에서 바라볼 땐 너무나 유연한 오리 떼의 헤엄침은 물 속에 잠긴 두 물갈퀴 다리가 빚어내는 피나는 노력의 대가였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독자가 읽기에는 쓴 사람의 문장이 너무나 수려하고 유장하여 목구멍에 꿀떡 넘어가듯 너무나 손쉽게 읽힌다. 그러나 글을 만들어 낸 작가는 한 문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밤을 뜬눈으로 새우는 불면의 고통과 숱한 좌절을 겪어야 한다. 수십 번을 다시 고쳐 쓰고 더 좋은 표현을 찾아내기 위해 하룻밤에 수십 잔의 커피를 마시며 밤을 새운다. 방자하게도 글을 쓰겠다고 나선 지 40년이 된 나의 경우는 지금도 그런 고통을 겪는다.

시골의 오일장을 가보면 장터 변두리 한쪽에 화덕과 풀무를 차려놓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늙은 대장장이를 만날 수 있다. 화덕에서 꺼낸 시뻘겋고 투박한 쇳덩이를 망치 하나로 뚝딱뚝딱해서 단 몇 분 만에 아주 맞춤한 연장 한 가지를 요술처럼 만들어낸다. 구경꾼은 무심하게 바라보겠지만 당사자인 대장장이는 우직하게도 일생 동안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오직 풀무질과 망치 하나만 손에 들고 세월을 주름잡아 온 결과다.

우리는 자신이 계획해서 꾸려 나가는 일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선 쉽게 지나쳐 보거나 혹은 폄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걸핏하면 훈육하려 들거나 설익은 주장을 지나치게 떠벌리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운동선수가 필드에 나가서 목숨을 걸다시피 하면서 승부를 겨루는 모습을 우리는 관중석에 앉아서 바라본다. 선수가 불길과 같은 역동성과 투혼을 발휘하여 그리고 열정을 쏟아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우리는 지체 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며 소리 지르고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허튼소리 하지도 듣지도 마라
누가 23인의 전사보다
뜨거운 투혼을 가졌는가

그라운드에서 거리에서
가슴 벅찬 추억이면 족하다

그러나 열정을 모두 바쳐서 뛰고 또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났을 때 우린 가차 없이 외면하거나 심지어 매도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하여 손가락질을 받은 당사자는 좌절과 고통으로 불행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이런 비틀어짐은 어쩌면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횡행하는 정치논리와 너무나 비슷해서 수치스럽다. 패기를 동원하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실패하거나 실수한 사람은 입지가 좁아지고 심지어 설자리가 없어지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다. 실패한 사람, 불행한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줄 줄 아는 사회가 올바르고 따뜻한 사회다.

우리는 지금 월드컵 개막을 하루 앞에 두고 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에서 듣지 않아도 좋을 잡음이 들린다. 알고 보면 모두가 허튼소리다. 태극전사 23명이 모두 승리의 결의를 다짐하지 않는 선수는 없다. 장소가 어디든 또다시 우리가 하나 되는 뭉침이 그래서 우리의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는 데 장소 따위가 도대체 무슨 걸림이 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패기 넘치는 젊은 생명들이 얼마 전에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에서 살아남은 장병이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장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장병이 환자복 일색의 모습을 갖추도록 명령한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우리 젊은이들은 그처럼 나약한 모습으로 보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낼지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 16강이나 8강에 들 수 있을지 모를 일이고 아니면, 그런 결과가 전혀 없을지 모른다. 중요한 점은 23명의 태극전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중요하고 기백과 담력에 가득 차 있는 아주 믿음직한 선수란 믿음을 갖는 일이다.

그들도 우리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그리고 훨씬 더 많이 상대편의 골문을 가르고 싶은 투혼으로 자신을 담금질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그들은 우리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전선에 나가 싸우는 병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원정 경기에서 불행하게 다리 부상을 당해 월드컵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던 선수가, 반기는 사람도 없는 빈 공항에 목발을 짚고 귀국하는 쓸쓸한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짓게 된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우리가 모든 열과 성의를 바쳐 하나 된 모습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해서 보상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응원하는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따로 있어야 하고, 선수는 또 그들이 지켜나가야 할 모습이 따로 있어서다. 서로의 다른 모습에서 자긍심과 패기를 가질 때 비로소 둘이 하나 되는 감격적인 모습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승패를 초월해 모두가 하나 되는 모습으로 충분하다. 성적을 떠나 모두가 가슴 벅찼던 추억을 갖는 일만으로도 충분하다. 태극전사여, 아프리카의 태양 아래서 뛰고 또 뛰어라. 우리가 하나 되어 응원할 테니.

김주영 소설가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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