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10>나는 마사이족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18일 03시 00분


◇나는 마사이족이다/안영상 글 그림·멘토

마사이족을 통해 우주를 보다

《“보는 것이 천박한 사람들은 보편과 일상에 대한 인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에이즈, 가난, 동물의 세계와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을 부정적 이미지로 몰고 간다.…그러나 내가 경험하고 느낀 아프리카는 너무나 건강하다. 우리가 가졌다고 자랑하는 변태적인 문명의 잣대로 재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거기에 바탕을 둔 순수한 삶의 모습이 있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버스와 마타투(제멋대로 간다는 뜻의 합승버스)를 갈아타고 다섯 시간, 그러고는 또 걸어서 여덟 시간 걸리는 산 중턱 마을. 한국에서 온 무중구(외국인이라는 뜻)인 저자는 이 마을 카미오루 집안의 성씨를 받았다. 그 집안의 가장은 그에게 행운이라는 뜻의 ‘로뮤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종이에 이름을 쓰게 한 뒤 그 위에 침을 뱉어 축복을 내리고 가족의 일원임을 선언했다.

마사이 가족에 들어온 무중구가 가질 자세는 무엇일까. 습관과 생활 모두 마사이에게 동화되도록 노력할 수도 있다. 또는 마사이에게 유익할 외부 세계의 기술이나 가치를 가르쳐 줄 수도 있다. 저자가 ‘로뮤냑’으로서 취하는 길은 그 가운데 있다. 또는 그 둘 모두이다.

마사이 가족에게 그는 두 가지를 제안한다. 하나는 우물을 파자는 것, 또 하나는 농사를 지어 보자는 것.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2km 떨어진 개울에서 물을 길어오는데 근처에는 소똥이 널려 있다. 물속 기생충이 혈관을 타고 올라가 뇌를 마비시키기도 한다. 토착 신앙 때문에 땅에 손대기를 두려워해 채집 생활만 하다 보니 영양의 불균형도 문제다.

저자는 두 가지 ‘생활 개선’ 목표를 실현한다. 집 뒤와 산기슭에 감자 배추 옥수수 밭을 일군다. 한결 풍족하게 음식을 나누다 보니 충혈돼 있던 눈자위가 모두 하얗게 돌아온다. 땅에 손대기 두려워하던 이들이 우물도 직접 판다. 이뿐이 아니다. 끈을 매서 당나귀를 타는 모습을 선보이자 모두 놀라 자빠진다. 생수병으로 간이 샤워시설도 만든다. 파리 떼가 달라붙은 아이들을 씻기면 머리에서 흙탕물이 쏟아진다.

이 같은 변화는 바람직한 일일까. 이 점에서 이 책은 독자의 고민을 요구한다. 저자가 할례 과정에서 겪는 소년 소녀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고통 또한 삶의 일부’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세계의 모든 죄악과 부정은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데 있지 않을까. 고통과 죽음 그것이 삶의 일부 혹은 전부라는 의식에 도달해 보자. 우리의 진정한 삶은 그것 너머에 있다는 의식 말이다.” 그러나 밭을 일궈 풍족한 영양분을 조달하고, 우물을 파서 깨끗한 물을 확보하며, 아이들에게 샤워의 편리를 제공하는 일 역시 ‘불편의 고통’을 줄이는 일 아닌가.

마사이의 일상과 관습, 사고 체계를 소상히 소개하는 데 초점을 둔 책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사이 마을에서 겪은 경험을 기록한 첫 부분을 지나면 책은 조금씩 우주와 생명에 대한 ‘명상록’에 가까워진다. 책 말미에는 한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부정기 잡지 ‘버그’를 발행하는 존 스콧 버거슨이 저자를 인터뷰한 글이 실려 있다. 흥미롭지만 ‘아프리카’나 ‘마사이’와 무관한 이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 책 분량은 160여 쪽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글 대신 사진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데, 마사이의 모습을 담은 초반부와 달리 들판과 하늘, 바다를 담은 중반 이후의 사진에서는 ‘아프리카’만이 갖는 고유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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