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용석]국격 깎아내린 ‘캐머런 방한 해프닝’

  • 동아일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을 가까이서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환경부는 13일 ‘환경을 위한 글로벌 기업정상회의(B4E)’를 이렇게 홍보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주최로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캐머런 감독이 연사로 참여한다는 사실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영화 ‘아바타’로 주가를 높인 캐머런 감독의 첫 방한을 앞다퉈 보도했다.

그러나 이 내용은 사실이 아니었다. 동아일보 기자들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캐머런 감독의 일정을 관리하는 할리우드 영화사 등 여러 경로로 수차례 문의했다. 하지만 “방한할 계획이 전혀 없다(absolutely not)”는 일관된 답변이 돌아왔다. 주최 측에 다시 물어 보니 “사실은 조율 중”이라고 말을 바꿨다. 캐머런 감독 측에 또다시 질문했으나 그들의 입장은 확고했다.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회의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지 않고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토론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행사 홍보를 맡은 환경부와 글로벌 홍보대행사 에델만이 애당초 캐머런 감독의 방한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홍보에 활용했다는 점. 환경부 발표가 있었던 날 환경부의 한 공무원은 기자에게 “사실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실토했다. 에델만 관계자도 “캐머런이 불참할 것 같다고 환경부에 전해줬는데도 그대로 발표하더라”고 귀띔했다. 캐머런 감독뿐만 아니라 주최 측이 내세웠던 유명 기업인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방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환경부와 에델만은 UNEP가 내용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등 협조가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정해지지 않은 내용을 섣불리 발표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공동 주최를 맡으면서 참석자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상대가 국제기구라고 해도 요구할 것은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홍보 욕심에 캐머런 감독과 브랜슨 회장의 명성을 무리하게 활용하려 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행사를 띄우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발표해 국민을 우롱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당사자들이 외국에서 이런 모습을 지켜봤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은 올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그런데도 이런 해프닝을 벌이는 것은 스스로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용석 사회부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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