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기오]정치의 바다에 빠져버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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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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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敎育)의 자주성(自主性) 전문성(專門性) 정치적 중립성(政治的 中立性) 및 대학(大學)의 자율성(自律性)은 법률(法律)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한다. 헌법조문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 년간 우리 교육은 정치에 깊숙이 휩쓸렸다. 더 늦기 전에 이 위험한 교육파괴적 추세에 확실한 제동을 걸어야 한다.

보수 진보 싸움 속에 정치 이슈화

헌법이 요구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의미에 관한 가장 명쾌한 해석은 2003년 3월 25일의 헌법재판소 판결문이 제공한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이 국가권력이나 정치적 세력으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교육이 본연의 기능을 벗어나 정치영역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헌법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교육은 본질상 이상적이고 비권력적인 것인 반면 정치는 현실적이고 권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교육과 정치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육자는 정치에 가까이 가지 말고 정치인은 교육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이 헌법정신이라는 설명이다.

헌법정신에 반한 일이 너무나 많이 발생했다. 먼저 입법부에서는 여야 간 표결을 피하고 합의에 의한다는 국회 교육위원회의 오랜 전통이 깨졌다.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이후 국회 교육위원회는 여야 간 정쟁의 주요 무대로 변질됐다. 행정부에서도 저간의 사정은 동일했다. 한 대통령 밑에서 6, 7명이 바뀔 정도로 교육부 장관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특정 판결을 지적하지는 않겠으나 사법부 역시 근자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 정신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았다. 입법 행정 사법부를 막론하고 정부 전체가 교육을 정치화하는 선봉에 섰다.

정치의 주역이라 할 정당은 어떠한가. 원래 우리 정당은 교육문제에 비교적 관심이 적었다. 이들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5년 5·31교육개혁안 발표 이후부터였다. 민주당은 처음으로 교육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공개 채용하여 1997년 대선 공약을 준비할 만큼 교육을 정치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당내에 교육특별위원회를 거의 상설화한다. 열린우리당은 교육특별위원회 외에도 사립학교법 특별위원회 등 교육주제별 특별위원회를 수시로 가동했다. 정당의 이런 변화는 교육문제가 중앙정치 이슈를 넘어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면서 정당의 하부조직에서부터 교육 부문 선거공약 준비의 필요성이 증가한 탓이 크다.

정당이 교육문제에 깊이 개입하면서 정당의 본질적 속성인 보수 진보의 세계관 갈등이 본격적인 교육정치를 촉발시켰다. 급기야 교육감을 정당 공천에 의한 시도지사 후보와 러닝메이트로 하자는 지극히 정치적인 구상까지 나오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교육감 선거부터 거리 두기 해야

서구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휴머니즘의 오랜 유산으로 인해 정당의 세계관 대립이 인간관을 기반으로 하는 학교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휴머니즘을 모르는 한국의 정당과 정치인, 나아가 일부 몰지각한 교육계 인사로 인해 세계관과 인간관이 마구 뒤섞이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위험해진다.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진정 구현되려면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다. 그러므로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

우선은 이번 6월의 교육감선거부터 정치와 교육 간의 거리를 두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적어도 교육감 선거는 선거공약기술자에 의존하기 쉬운 정책선거보다는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백 년 전 매니페스토 운동이 서구에서 시작될 때는 인물의 과거 행적과 인품, 역량 등 인물 검증이 주된 목적이었다.

정기오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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