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재벌 회장과 트위터

  • 동아일보

“뭘 어케해야 하는지 갈켜조∼ ㅠ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7십니다 bye! 모두 ‘즐퇴’하세요”
(이수그룹 김상범 회장)

요즘 대기업 회장들의 ‘트위터’질이 화제다. 나이 40, 50대의 이들은 10, 20대 청소년들이 즐겨 쓰는 용어를 구사하면서 최근 한국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푹 빠져 있다.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로 알려진 박용만 ㈜두산 회장은 지난주 애플의 ‘아이패드’를 사서 개봉하는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려 팔로어(follower)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아이패드로 자신의 얼굴 반쪽을 가린 채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한 대학생이 “회장님 얼굴이 매우 작군요 ㅜ 부럽습니다” 하고 말을 걸자, 그는 “얼굴이 아이패드만 하면 얼굴 아니자나요. 선풍기지”라고 익살스럽게 대답했다.

140자 내외의 글을 올릴 수 있는 ‘미니 블로그’ 트위터에서 회장들은 주로 최신 정보기술(IT)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소소한 일상생활을 주제로 대화를 한다. 간혹 자신의 경영철학을 내비치거나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경영 혁신에 활용하기도 한다. 대기업 회장들이 이처럼 대중과 직접 대화하는 것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기자는 10여 년간 기업들을 취재하면서 회장들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인(人)의 장막’이 쳐졌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우선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회장을 직접 만나기가 쉽지 않고, 만나려면 미리 홍보실 등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사전 약속 없이 호텔 로비 등에서 회장을 만나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누면 기업에는 비상이 걸린다. 회장이 몇 마디 하기가 무섭게 임직원들이 달려와 “이제 그만하시죠” 하며 막아선다. 그런 다음 몇 페이지에 걸친 ‘설명자료’를 내고 “회장님 말씀은 이러저러한 얘기이니 확대해석하지 말아 달라”며 전화를 해 피곤한 적도 있었다. 취재 기자에게 이러니 일반인들에게야 더 말할 나위 없으리라.

기업들의 민감한 반응은 이해가 된다. 회장의 한마디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또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른 환경에서 살아와 섣불리 한마디 했다가 오해를 살 여지도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과 소통할 기회가 너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증권가 사설 정보지(속칭 찌라시)와 인터넷에는 연예인과의 스캔들 등 온갖 소문이 돌아다닌다. 이 중에는 맞는 것도 있지만 ‘소설’로 판명 나는 것이 많다.

직접 만나본 대기업 회장들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을 만난 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왜 임원들은 못하게 막을까?” 심지어 “회장은 안 그래 보이는데 기업 문화는 왜 저렇게 꽉 막혔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일상적인 생활 등에서 일반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트위터를 하는 회장이 늘면서 기업들은 전담자를 두어 회장의 트위터링을 체크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뒤에 하는 것이라 사전 체크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돌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고 물러서지만 않는다면 첨단 통신수단은 대기업 회장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직접 대화를 통해 일반인들은 재벌에 대한 편견을 벗고, 경영자는 소비자와 좀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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