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두승]위기관리 매뉴얼 부재라는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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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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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초계함 천안함에 대형 사고가 발생한 지 1주일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승조원 46명의 생사를 알지 못한 채 힘겨운 탐색구조작업이 진행돼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갖가지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고 여기에 근거 없는 유언비어까지 나돈다.

원인은 가라앉은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를 인양하여 정밀 분석하면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인이 어디에 있든 원인을 밝히는 일과는 별개로 앞으로 이와 같은 유사한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좀 더 명확하고 체계화된 매뉴얼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전시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전시 상황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사고 해역 인근 해상은 조류가 거세고 기상조건이 좋지 않은 지역으로 잘 알려졌다. 전시에는 훨씬 더 어려운 상황 아래에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 많은 국민이 잘 납득하지 못하는 의문이 있다. 초기에 출동한 고속정이 인명 구조에서는 한계를 드러냈고 구난함과 기뢰탐지함의 출동이 지체됐으며 가라앉은 군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의외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위기 시에 군이 보여야 할 기민함에도 이번 경우에는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각기 다른 기능을 갖는 여러 종류의 함정이 왜 초기에 탐색구조에 집중 투입되지 않고 차례차례로 투입됐는가 하는 문제도 설명이 필요하다.

혹시나 대양 해군을 지향한 나머지 연안 해역 작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국가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삭감된 국방예산으로 인해 첨단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닌지 해명해야 할 부분도 많다. 밖으로 노출할 수 없는 군사기밀 사항도 있을 수 있어 군 역시 답답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군은 항간에 잘못 알려졌거나 국민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혹 군에 과실이나 미흡함이 있었다면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를 진솔하게 밝히는 것이 군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길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의문으로부터 차후를 대비하는 데 필요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 진행 중인 구조작업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마무리 짓고 앞으로 이와 같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전쟁이나 국가 위기 시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의 경우의 수를 놓고 하나하나씩 짚어 가며 대응방안을 재정비해야 하리라 본다. 국가 비상시에는 군의 능력뿐만 아니라 경찰과 민간의 인력과 자원을 함께 활용하는 민·군·경 협력체제가 중요하다. 이즈음에서 총체적인 국가위기관리체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아무리 위급해도 원칙에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구조과정에서 희생자가 발생했다. 충분한 장비도 갖추지 못한 채 여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시도하는 구조활동은 재고해야 한다. 사회 일각에서 군을 지나치게 다그치듯이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대다수의 군인은 악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군에 대한 신뢰가 많이 손상됐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국민이 군을 깊이 신뢰하고 편안한 삶을 영위하도록 군이 심기일전해 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우리도 구조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군을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로 성원하고 섣부른 판단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겠다. 정부도, 군도, 그리고 국민도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간절한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실종자 가족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한다.

홍두승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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