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곧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이 여러 채널로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외국행은 중국 아니면 러시아가 고작인데 이번에도 방중(訪中)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정상적인 지도자라면 이른바 혈맹인 중국에 가면서까지 위해(危害)가 두려워 잠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대에 너무 뒤떨어진 북한의 희한한 비밀유지 요구에 맞장구치는 중국도 이해하지 못할 대목이 있다. 2000년 이후 다섯 번째인 김 위원장의 방중이 지난날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세계의 조롱을 면할 수 없다.
김 위원장의 과거 방중은 더도 덜도 아닌 앵벌이 수준이었다. 국제적 압력이 강할 때는 중국의 비호를 얻어내기 위해, 경제 위기가 닥칠 때는 원조 보따리에 눈독을 들이며 중국을 찾았다. 김 위원장은 2000년 상하이 푸둥 지구의 발전상을 보고 “천지개벽” 운운하며 깜짝쇼를 했지만 중국의 성장 동력인 개방과 시장경제는 배우지 않았다. 오히려 작년 말 이른바 ‘화폐개혁’으로 장마당(시장) 죽이기에 나섰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2004년 4월 방중 직후엔 6자회담에 복귀했지만 2년 뒤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중국은 주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핵개발에 몰두하는 김 위원장의 들러리 노릇이나 할 것인가.
북한 정권은 스스로 궁지에 머리를 깊이 처박은 형국이다. 2차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자초했다. 금강산 관광객 사살과 세 번째 서해상 도발도 남한이 관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세습 문제, 화폐 개혁 후유증은 내부의 심각한 위기요인이다. 김 위원장은 ‘구걸 행각’만으로는 체제를 안정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6자회담 복귀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돌이킬 수 없는’ 핵 포기 약속을 받아내지 못한 채 ‘3대 세습 인정’ ‘경제적 구명(救命)’ 같은 선물이나 준다면 중국은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을 감싸는 데 치중한다면 국제사회에 배신감을 안기는 일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북한 정권의 명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중국”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이 결단하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