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 몇 푼에 불법업소 봐주는 경찰관 수치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5일 03시 00분


서울 강남의 어느 대형 유흥업소 업주와 휴대전화 통화를 한 경찰관이 지난 1년간 63명에 이른다고 경찰 스스로 밝혔다. 그중에는 30통 이상 통화자 9명, 100통 이상 통화자 3명, 400통 이상 통화자 1명이 포함돼 있다. 유흥업소 단속권이 있는 경찰관이 업주와 자주 통화하는 것은 이들 사이에 ‘검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만하다. 유흥업소와 일부 빗나간 경찰관들의 유착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그런 서글픈 구태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경찰은 유흥업소 업주 이모 씨의 차명계좌에서 경찰관들에게 돈이 흘러들어갔는지를 조사하는 한편 이 씨의 과거 휴대전화 통화기록도 살펴보고 있다. 경찰은 다른 사정(司正)기관과 행정기관 공직자들의 관련 여부도 조사할 계획이다. 이 씨는 10여 년 전만 해도 거리에서 손님을 끄는 유흥주점 호객꾼(속칭 삐끼)이었다. 그런 사람이 강남의 대형 유흥업소 여러 곳을 운영하는 ‘큰손’으로 급성장한 것은 비호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씨의 업소도 불법영업 단속에 걸린 적이 있었지만 직원들만 잡혀가고 그는 처벌을 잘도 피해 나갔다.

유흥업소 불법영업과 그 뒤를 봐주는 비호세력의 존재는 이 씨의 업소만이 아닐 것이다. 이번 기회에 유흥업계와 경찰관을 비롯한 공무원들의 검은 커넥션을 다 파헤칠 필요가 있다. 과거처럼 경찰이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끝내고 덮어버리면 유착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우선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단호한 수사 의지를 보여야 하고, 부패 척결을 선언한 정부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공직자들이 박봉 때문에 ‘생계형 뇌물’을 받던 시대는 지났다. 아직도 경찰관 등 공직자들이 유흥업소의 불법을 눈감아 주거나 단속 정보와 검은돈을 맞바꾸는 후진국형 부패가 남아있다는 사실은 국가적, 국민적 수치다. 돈 몇 푼에 명예를 버리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국격(國格)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제복 입은 경찰관들이 자식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고, 아내가 그런 남편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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