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희]선생님이 희망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개학 첫날 나는 깜짝 놀랐다. 선생들이 모두 교실 문 앞에 나와 함박웃음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환영하는 모습이 단골손님 맞는 가게 주인 같았다. 미국식 인사라더니,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억양을 높여 하는 인사 소리에 복도가 시끌벅적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부쩍 커서 돌아온 아이들은 그렇게 학교와 선생님들의 환대 속에서 새 학년을 맞고 있었다.

1년여 전, 미국에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지켜본 미국의 교육은 (학생을) 배려하고 (학생과) 밀착하며 (학생의) 눈높이에 맞춘 선생님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영어도 모르고 친구도 없던 아이가 낯선 학교에 정을 붙이고 그 나라 노래며 역사를 읊조리게 된 것은 시설도 제도도 아닌 순전히 선생님들 덕분이다.

과학과 사회를 가르치는 담임선생님은 가끔 한국어가 깨알같이 적힌 A4 용지를 아이 과제물 폴더에 넣어 보내 나를 당황시켰다. 알듯 말듯 어색한 한국어로 된 유인물의 정체는 인터넷 자동번역기로 번역한 미국의 교과서였다. 선생은 “어떻게 가르칠까 고심 끝에 알아보니 이런 깜찍한 방법이 있었다”며 스스로 대견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도움이 되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솔직히 자동 번역된 교과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움이 된 건 그만큼 신경 쓴다는 선생님의 마음이었다.

美 보낸 아이 이끌어준 관심

조금 깐깐해 보이는 영어 선생은 학기 초 면담에서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른 아이들은 문학을 이야기하고 글짓기를 하는데 영어로 이름 석 자 겨우 쓰는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선생은 처음에 영어 단어들이 적힌 별도의 유인물을 만들어 집으로 보내며 ‘특별 관리’를 하는 듯하더니 곧 과제물과 퀴즈, 발표 등에도 똑같이 참여하게 했다. 아이는 자기를 특별하게, 동시에 평범하게 대해주는 선생님 덕분에 영어가 쑥쑥 늘었다.

미국 초등학교를 처음 다니는 외국인 학생에게 첫 9주 동안은 점수는 매기되 성적표에 기입하지 않는다. 언어 문제 때문에 낮게 나온 점수를 실제 과목 점수로 주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단, 수학 등에서 높은 점수가 나오면 그대로 성적표에 기입해 준다. 시험에는 가르쳐 준 것이 그대로 나오고 점수가 낮으면 재시험을 보게 해서 점수를 올린다. 미국의 시험은 함정을 파놓고 피해 가는 능력을 보기보다 가르친 것을 제대로 배웠나를 확인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배운 것만 열심히 하면 점수가 나온다. 자연히 사교육이 파고들 틈이 없다. 그런 시험이 길러낸 아이들은 종종 제도에 순응하고 공정함과 배려의 가치를 안다.

최근 ‘알몸 졸업식’ 뒤풀이 동영상이 던진 학원폭력 실태와 교육청의 인사 청탁 및 납품 비리, 자율형사립고의 사회적 배려 대상 부정 입학 사태, 브로커의 입학사정관제 서류 위조 사건 등으로 그러지 않아도 현안이 산적한 교육계가 더욱 어지럽다. 밖으로는 사교육이라는 괴물과 싸우며 안으로는 부정과 폭력을 근절해야 하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교육열을 칭송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 열기를 슬기롭게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의 확대, 고교등급제나 기여입학제에 대한 조심스러운 타진, 방과 후 교실을 통한 학력 신장, 교사평가제 같은 다양한 접근이 처방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너무 약이 많아 무엇을 먼저 취해야 할지 헷갈리고,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염려되기도 한다.

학교에는 자율성을, 학생에게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하는 여러 가치 중에서 으뜸은 교사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선하고 거창한 교육철학이나 정책도 한 명의 ‘좋은 선생님’과 바꿀 수는 없다. 교육의 질은 결코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교육계에 ‘Rhee-Form(개혁을 뜻하는 reform에서)’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미셸 리 워싱턴 교육감이 주도한 개혁에도 중심에는 선생님이 있었다.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적합 교사 226명을 해고한 일을 두고 인터뷰에서 “그렇게 선생에게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리 교육감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선생님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좋은 선생님들이 신나게 일하도록 정책 역량을 모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막 시행된 교사평가제는 교사의 질을 높이는 바람직한 출발이다.

교사가 신나서 일하게 해야

1년 후 한국에 돌아온 아이는 잠시 바람 쐬듯 맛본 미국의 학교에 대해 매우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뭔가 기본적인 점을 충실히 가르치던 곳, 열심히 하면 점수가 나오던 곳, 그리고 조금은 만만한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의 그런 인상이 학교의 시설이나 제도가 아니라 바로 선생님에 대한 인상이었음은 물론이다. 미국 교육의 얼굴은 바로 선생님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