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서승직]기능강국에서 기능선진국으로

  • 동아일보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원전 수주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작년 12월 4일 정부관계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원전 협상 과정에서 UAE가 기능인력 양성을 비롯한 기능올림픽 선수훈련 등의 기술 협력을 요청하면서 이틀 후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개방협상 테이블에 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와 공식 대표를 초청한다는 내용이었다.

UAE가 기능강국 한국을 벤치마킹하고 기술협력을 요청한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우리의 노하우를 배우려는 이면에는 자원 고갈에 대비한 UAE의 국가적 전략이 있는 듯하다. 한국이 세계 최하위의 빈곤국가에서 산업화의 역경을 성공적으로 이룩하고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선도하는 중심 국가로 일어섰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이는 역경의 시기에 오늘의 강점을 키워온 선배 기술 기능인의 한결같은 노력의 결과다. UAE는 지난해 제40회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메카트로닉스와 웹디자인 등 8개 직종에 참가했다. 메달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한 8개국과 더불어 참가국 중 공동 최하위에 그친 실력이지만 기능 인력 양성만큼은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나라다.

한국은 수년 전부터 회원국 상호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회원국에 기술을 전수한다. 산업화의 기반을 다지는 브라질을 비롯한 여타 회원국도 기능강국 코리아의 발전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고 있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훈련센터 하나 없는 기능강국의 실체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무엇보다도 기능강국의 강점을 살릴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의 강점을 국가브랜드화하는 투자와 노력은 소홀했다. 금메달 획득만이 목표의 전부였다.

이제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명실상부한 기능강국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는 작년 캘거리 기능올림픽 종합우승 직후 기능 진흥을 위한 국제기능센터를 설립해 기능올림픽 선수촌으로도 활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기능센터 설립은 배우는 나라에서 가르치는 나라로 더욱 굳건히 설 수 있는 대외적인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우리가 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며 국가의 품격을 갖추는 사업이기도 하다.

안으로는 기능강국에서 기능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고민이 있어야 한다. 기능강국의 역량을 국가성장 동력으로 흡수해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부 대기업이 정부와 기능장려 협약을 맺어 기능올림픽 입상자를 특별 채용하거나 우수 기능인을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계획도 기능선진국을 다지는 초석이다.

서승직 인하대 교수 국제기능올림픽 한국기술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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