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세형]현지 제도 꿰뚫어야 해외 수주 뚫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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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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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는 1996년 러시아와 합작해 로스토프 자동차 공장을 설립했지만 과도한 세금으로 3년도 되기 전에 투자금만 날린 적이 있다. 당시 러시아 법제도를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뛰어든 탓이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이 현지 제도와 정책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비슷한 낭패를 겪은 사례는 훨씬 많다.

외교통상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1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재외공관장과 경제인과의 만남’ 행사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잠잠해진 것을 계기로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진출을 노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자들로 붐볐다. 하지만 참가 기업인들이 제품 판매나 시장 진출에만 관심을 가질 뿐 현지 법제도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었다.

실제 상담 과정에서 기업인들은 재외공관장들에게 제품 판매와 수주 전략을 설명해줄 것을 주로 요청했다. 하지만 공관장들은 상담을 마친 뒤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이제는 현지의 제도와 정책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합법적인 로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박준우 유럽연합(EU) 겸 벨기에 주재 대사는 “일본의 경우 EU 집행위원회 같은 핵심 정책기관들이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만 200여 개의 기업과 협회 사무소가 설치돼 있다”고 강조했다. EU는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다 보니 각종 제도의 생성이나 집행과정이 매우 복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일본의 기업이나 협회들은 브뤼셀에 고위 임원급 관계자를 장기간 배치해 각종 제도와 규정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현대자동차가 사무소를 설립한 것이 유일하다.

올해부터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발효된 거대시장 인도에서도 기업들이 현지 정부와 제도를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 부각됐다. 백영선 주인도 대사는 “각종 제도나 행정절차를 감안할 때 인도는 한국 기업들에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들은 기술혁신과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오히려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승자효과’를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지 소비자에 대한 이해만큼 제도와 정치에 대한 이해, 나아가 우리 기업들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통로를 갖추는 작업에도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도 현지 사회의 틀에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글로벌 무대로 나가는 기업들이 다시 한번 새겼으면 한다.

이세형 경제부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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