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낙인]권위주의 벗고 서비스 법복 입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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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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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원칙에 입각한 민주법치국가의 건설이 이 시대 소명이다. 그런데 모범을 보여야 할 법조계가 국민을 불편하게 한다. 평생 법학교육에 몸담은 필자로서 송구스럽다. 2008년 촛불집회 때 많은 시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를 외쳤다. 민주공화국은 국민이 참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역사적으로 공화국은 절대군주제를 철폐시킨 혁명적 구호와 연계된다. 군주제와 귀족제를 폐지했지만 법률가들은 법복귀족(noblesse de la robe)으로 환생한다. 법률가 직업은 귀족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신뢰 잃은 사법은 존재 이유 없어

광복 이후 사법부는 일제강점기의 법조인으로 채워졌다. 그분들은 대한민국의 법적 기초를 닦는 데 기여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권위주의 사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고시제도는 육법전서에 매몰된 채 전인교육에 소홀했다. 타인을 법적으로 재단하는 법률가는 성직자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고급 직장인으로 전락한 일부 사법관의 언행이 타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인격적 상처를 안겨준다.

이래서는 안 된다. 첫째, 사법관도 철저하게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검찰을 포함한 사법은 임명된 권력이다. 임명된 권력이 국민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 국민적 신뢰를 상실한 사법은 존재 이유가 없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사법은 공역무(public service) 수행기관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둘째, 사법관이 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재임 중에도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인간은 금수와 달리 고유한 인격적 존재이다. 사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인격으로 대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평생 법원이나 검찰에 가지 않고 사는 게 행복한 삶일 수 있다. 그만큼 사법적 판단을 받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재판 결과 여하를 떠나 법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당사자의 쓰린 가슴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

셋째, 권위주의적 외관을 벗어야 한다. 법정의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법원과 검찰청 건물도 너무 고압적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법정은 권위적 외투를 벗어던진 법정의 상징이다. 어둡고 칙칙한 법정을 밝고 환한 색상으로 바꿨다. 당사자와 재판관이 지근거리에 있고 당사자가 일어서면 재판관과 같은 눈높이다.

넷째, 지혜로운 젊은 법관은 덕성이 부족하다. 국민은 후덕한 법관을 원하는 것 같다. 현행 법관 충원구도는 유럽 국가와 유사하다. 미국은 기성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선발한다. 로스쿨 도입과 더불어 미국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어느 경우이든 간에 사법관에 대한 여과 장치가 필요하다. 서울변호사회가 법관에 대한 평가결과를 내놓았다.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다.

심리-판결 공개원칙도 실천해야

다섯째,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 일성은 구술심리주의 강화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폭주하는 업무에 쫓긴 나머지 제대로 된 구술심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법관의 막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제 사건은 쌓여만 가는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할 여유가 없다. 법률가의 대량 배출시대에 걸맞게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현실화돼야 한다.

끝으로 사법절차의 공개성과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변협이 요구하는 동영상 공개까지는 어렵더라도 헌법이 명시한 심리와 판결 공개원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사법의 생명인 권위를 세우려면 권위적 사법의 구각을 벗어나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 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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