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경력 10년 이상의 판사에게 형사단독 재판을 맡기고 2012년부터 5년 이상의 경력 법조인을 대상으로 법관을 선발한다는 내용의 사법부 개혁안에 대한 보도(23일자 본보 A1·3면 참조)가 나간 뒤 주말 내내 법원 안팎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법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부 소장 판사들의 반발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미리 개혁안 일부가 보도돼 당혹스럽다”면서도 “지금처럼 법원 개혁에 대한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법원의 개혁안을 미리 공론화하게 된 점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말했다.
재야 법조계와 부장판사 이상의 법관 상당수는 단독판사의 경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판결의 신뢰성을 높이고 법관 사이의 소통의 기회를 넓힐 수 있다”며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일부 소장파 판사들은 “나이와 경륜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인사와 사무분담 권한을 판사회의에 대폭 이양해 법관 독립을 강화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처럼 최근 불거진 법원의 판결 시비 논란에 대해 법관의 ‘소통’과 ‘독립’ 사이에서 무너진 균형점 찾기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법관의 수는 적었고 법관의 자질과 가치관도 비교적 균질한 편이었다. 당시에는 동료 법관들끼리 자주 모여 자신의 사건을 내어놓고 토론을 벌이곤 했다. 1996년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 때 서울고법 배석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치열하게 토론을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법원의 판례와 사회적 공감대에 대한 토의가 자연스레 이뤄지다 보니 판결의 오차나 편차도 적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사법연수원 수료생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법관 수도 급증했다. 그만큼 다양한 경력과 가치관을 가진 법관이 많아지면서 오히려 법관 사이에 소통의 기회는 줄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초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이 불거진 이후에는 선후배 사이의 단체 회식자리조차 현저하게 줄었다. 일부 단독 판사들은 선배는 물론 동료들의 조언에도 귀를 닫은 채 자기 논리에만 빠져 홀로 재판하다 보니 ‘튀는 판결’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사법부 개혁안은 인사 및 사무분담과 관련돼 있어 전체 판사회의를 거쳐야 한다. 판사회의는 의결권이 없는 자문기관이다. 그러나 개혁안이 판사회의에서 거센 반대에 부닥칠 경우 법원 내 갈등도 초래할 수 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법원을 바라는 것은 국민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이 다수의 침묵하는 법조인들의 요구까지 잘 수렴해 ‘소통과 독립’의 균형을 맞춘 합리적인 개혁안을 내놓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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