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골목길 눈까지 시청 구청이 치울 순 없다

  • 동아일보

4일 서울을 뒤덮었던 폭설(적설량 25.8cm)로 도로는 눈밭으로 변했다. 전철도 여기저기서 고장을 일으켰다. 육상 교통뿐 아니라 하늘길과 뱃길도 꽁꽁 막혔다. 기상관측 이래 최대치의 폭설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일부 시민과 언론은 서울시의 대응 방식이 부실했다거나 제설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지적을 쏟아 내고 있다. 특히 그 누구보다 험난했던 자신의 출근길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내가 낸 세금을 어디다 썼느냐”고 호통 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집 앞 이면도로는 어쩔 수 없다고 이해했으나 버스가 다니는 큰 도로도 전혀 제설되지 않았고 전철은 비명이 나올 정도로 제때 오지 않아 평소보다 몇 배 긴 출근 고역을 치르고 있다는 내용이 주다.

유례없는 폭설을 일시에 말끔하게 치우려면 서울시와 자치구가 45대만 갖고 있는 제설전문차량을 얼마나 더 많이 사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 차량의 대당 가격은 4억 원. 연간 유지비는 4000만 원이다.

어쩌다 한 번 내리는 폭설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수백, 수천억 원의 예산을 들여야 할지 모른다. 지방도시 곳곳에 지어진 대형 종합운동장이나 문화예술회관이 별 기능도 하지 못한 채 ‘어쩌다 한 번’인 행사만 치르고 있어 예산낭비라는 지적을 받는 것과 비슷한 설정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서울시가 이번 같은 폭설에 즉시 대응 가능한 수준으로 제설장비와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세우지 않을지 감시해야 할 시점이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제설 대책은 이번 폭설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했다. 밤샘 제설작업도 벌여야 했다. 현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게 해당 지자체의 주장이다.

반면 ‘내 집 앞 밤샘 쓸기’라든가 ‘같은 출근길 시민이 합심해 인도 제설’ 등의 소식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내가 낸 세금에 대한 권리 주장뿐 아니라 자발적인 시민의식의 발휘가 뒤따라야 이번 폭설 등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처할 수 있다. 선거가 몇 달 남지 않았는데도 정부가 집 앞 눈을 치우지 않으면 과태료 100만 원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할 정도로 시민의식이 실종된 상태다.

외환위기 때 무능한 정부를 탓하면서도 국민들은 금 모으기에 나섰다. 월드컵 때도 국민들은 알아서 질서 있는 거리 응원전을 펼치며 선진국을 능가하는 성숙한 사회 문화를 자랑했다. 눈 치우기에도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될 수는 없을까.

이동영 사회부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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