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퇴임 열흘 전인 2001년 1월 10일. 뉴욕타임스엔 그가 퇴임 후 프랑스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칼럼이 실렸다. ‘Bill Clinton: The French Years(빌 클린턴: 프랑스 시대)’라는 제목의 글을 쓴 필자는 프랑스 역사학자로 이민사를 연구하는 파트리크 웨일이었다. 그는 클린턴의 고향인 아칸소 주가 과거 프랑스의 속지(屬地)였던 루이지애나 주의 일부였기 때문에 프랑스로의 귀화 및 대통령 출마에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당시 프랑스에선 2002년 5월 선거를 앞두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웨일은 클린턴에게 보내는 서한 형식의 이 글에서 “많은 프랑스 시민들은 유망한 외부인(promising outsider)을 원한다”고 밝히고 “클린턴 대통령이 파리에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프랑스는 미국보다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정치 선진국임에도 클린턴의 리더십과 업적이 그에게 자국 대통령으로 출마해 달라고 권유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했다. 클린턴이 취임하기 전 미국은 경기 침체로 실업자가 1000만 명이나 됐고,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공화당 행정부 12년 동안 4배나 느는 등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클린턴은 8년간의 재임 기간에 일자리 2200만 개 창출, 사상 최장기 호황, 30년 만의 최저실업률 기록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가 르윈스키 스캔들로 국민들을 실망시킨 것을 제외하면 미국은 그 시절 대체로 번영하고 평화로운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년 전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 읽은 칼럼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순전히 한국의 참담한 정치현실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선진국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데도 유독 후진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을 보면 굳이 대통령 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한 외국 정치인을 영입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의회정치가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 평균 수준의 외국 정치인만 데려와도 한국의 웬만한 유력 정치인들보다 훨씬 헌신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다. 최근 여야의 예산 전쟁과 관련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구상에 이런 국회는 없다”고 개탄한 건 많은 국민이 공감할 것이다.
동아일보 1일자에 실린 신년 여론조사를 보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정치적 위상을 묻는 질문에 ‘높다’는 답변은 11%에 불과했다. 과학기술(62.3%) 스포츠(59.0%) 경제(36.0%) 군사력(35.1%) 예술문화(31.5%)와 비교하면 한숨이 나올 수준이다.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다. 국제 기준으론 도무지 ‘국민의 대표’답지 않은데도 버젓이 금배지를 달고 행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보답은커녕 나라 망신시키는 일만 골라 한다면 국민이 심판할 수밖에 없다. 난장판 저질 국회의 주역들이 누구인지 똑똑히 기억해뒀다가 6월 지방선거와 2년 뒤 총선, 대선에서 그들의 소속 정당과 당사자들을 응징해야 한다. 국민이 무서워야 정치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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