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어느 장로의 신앙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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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21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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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계 현역 원로 한 분으로부터 들은 솔직담백한 신앙고백이 잊혀지지 않는다. 70대 후반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호통을 잘 치고 성격도 괄괄하지만 속정이 깊은 분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모태신앙이란다. 차 한잔을 마시기 위해 들렀다가 우연히 듣게 된 얘기지만 1시간이나 자리를 뜰 수 없었다. 투박하지만 교회와 각종 신앙집회에서 들었던 어떤 간증보다도 여운이 남는다.

하나님과 함께 출퇴근하는 사이

그는 우선 하나님과 자신이 ‘매일 출퇴근을 같이 하는 사이’라고 했다. 언젠가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이를 실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침에 집에서 일어나 회사에 나올 때 “하나님 나가십시다” 하고 모시고 나갔다가 저녁에는 “하나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들어가시지요” 하며 귀가한다는 것이다. 즉, 하루 종일 하나님이 주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지낸다는 의미다. 하나님이 늘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화를 적게 내게 되고, 행동도 조심하게 된다고 한다.

재산가로 알려진 그는 또 한 번도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십일조는 기독교에서 자신의 수입 중 10분의 1을 헌금하도록 한 제도. 부자일수록 십일조를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이 아니라 교회나 아내가 회장으로 있는 구호단체에서 필요한 예산의 10분의 1을 부담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회 건축이나 선교 구제사업에 필요한 예산을 세울 경우 자신의 몫이 10분의 1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일부 목회자들에게 ‘악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또 하나님한테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바쳐야 한다고 말했다. 드린 것이 있어야 받을 것도 생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물론 물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 기도 봉사 등도 포함된다. 요즘도 교회에 가면 교인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며 반겨 주는 것에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꼭 교회가 아니더라도 가족이나 친지에게 잘하고, 불우한 이웃과 종업원들에게 잘해주는 것도 하나님께 잘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주종 관계가 아니라 ‘아주 친한 사이’라고 생각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응석을 자주 부리고 가끔 떼도 쓴다고 한다. “하나님 이런 건 좀 봐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번엔 좀 너무하시지 않습니까.” 그래야 하나님이 더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 자신도 할아버지를 하나도 어려워하지 않고 친구처럼 대하는 막내 손자를 특별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만 생각해온 자신 부끄러워

마지막으로 그는 세상에서 나를 끝까지 돌봐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노년의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돈과 명예, 신앙심 깊은 미모의 아내와 효성을 다하는 자녀들이 있지만 언제 어디서건 삶의 끝 날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줄 이는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신앙고백을 듣고, 40년가량 교회에 다닌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하나님과 출퇴근을 같이 하는 사이라고 생각해 보지 못했고,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했다. 십일조 생활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교회에 바친 것보다는 바라는 것이 훨씬 더 많았다.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로 그분과 나 사이는 감히 친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또 가까운 가족 친구 지인들을 위해 더 많은 물질과 시간을 썼으며, 아내와 자식 친구들이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장로님의 솔직담백한 신앙고백이 오래도록 나를 부끄럽게 하는 이유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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