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광표]서커스를 보러 갔다

  • 동아일보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서커스를 보러 갔다. 서울 청량리수산시장 옆 주차장 천막에서 공연 중인 동춘서커스. 접시돌리기, 애크러배틱, 동물 묘기, 그네 묘기부터 중국 상하이(上海) 오토바이 묘기까지 오랜만에 보는 서커스는 재미있었다. 공연 시간 100분이 금방 지나갔다. 관객은 불과 20여 명.

1925년 창단된 동춘서커스단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관객 감소와 재정난 때문이다. 1960, 70년대 화려한 곡예와 마술쇼로 천막 속의 수많은 관객을 사로잡았던 동춘서커스. 하지만 국내 서커스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관객은 줄었고 공연장 섭외도 어려워졌다. 무대에 설 사람도 부족해져 지금은 단원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과 중국 조선족이다.

동춘서커스단의 일일 공연은 이달 중순 잠정 중단된다. 더는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동춘서커스단의 박세환 단장은 “지금은 힘들어 잠시 쉬지만 꼭 재개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행스럽게 경기 수원시가 무상으로 3개월간 수원야구장 주차장 공간을 내주기로 해 공간 확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상황이 다소 나아지고 박 단장이 의지를 불태운다고 해도 관객이 계속 줄어든다면 서커스단은 영영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요즘 동춘서커스의 미래가 세간의 화제다. 동춘서커스단을 어떻게 되살릴지에 관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 동춘서커스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동춘서커스 84년 역사는 우리의 문화다. 그냥 내버려두어선 곤란하다. 정부 예산을 지원해 보존하도록 해야 한다.”

시장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시장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서커스에 국민의 예산을 지원한다는 것은 세금 낭비다.” 여기에 “현재 중국인과 중국 조선족이 단원의 절반이 넘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 세금을 지원해야 하는가”라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논의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 ‘동춘서커스 84년 역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다. 그 관심의 첫걸음은 동춘서커스의 역사에 대한 기록과 연구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동춘서커스를 20세기 민속 또는 근대 무형문화재로 보려는 시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무형문화재 제도는 대개 고려, 조선시대 때부터 전승되어오는 것들을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해오던 무형문화재는 보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건축물과 같은 유형문화재엔 이미 근대문화재의 개념이 도입되어 있다. 그 덕분에 최근 들어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관심이 커져야 보존도 가능한 법이다. 100년 이상은 되어야 무형문화재로 보존할 수 있다는 불문율을 벗어나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요무형문화재의 지정 대상은 전통 예능이나 기능 분야의 한 종목 한 종목이 대부분이다. 동춘서커스처럼 여러 종목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 장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동춘서커스가 20세기 우리네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살아있는 생활민속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지원 방식을 놓고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동춘서커스의 미래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이 한 시대를 함께했던 서커스에 대한 우리의 예의다.

이광표 문화부 차장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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