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은 2009년 한 해도 4분기로 들어섰다. 연초에 전 세계인 모두가 대공황의 공포에 질려 있을 때 일부에서 “빠르면 4분기쯤 위기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고 전망한, 그렇게도 학수고대하던 4분기가 왔다. 미국에서 시작한 위기의 도미노는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일단 멈췄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던 극도의 불확실성은 많이 사라졌으며 세계의 증시와 채권시장에서 돈이 돌고 실물경제 분야에서 재고가 거의 정리되면서 신규 주문이 늘었다.
특히 우리의 경우 전 세계에서 위기를 가장 잘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의 쇼핑몰에 가면 우리가 아직도 비상시인가 싶을 정도로 흥청대는 중이고 때 아닌 부동산 거품 걱정까지 해야 될 상황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국내외 상황을 다시 관측하면 하나도 속 시원하게 위기극복을 선언하고 샴페인을 터뜨릴 만한 점이 없다. 선진국의 실업률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투자심리도 얼어붙었으며 가계부채와 세계 금융시스템도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이고 그 여파는 우리 경제의 회복속도에도 미치고 있다.
신제품 신기술로 경제위기 극복
미래가 다시 불안하게 여겨지고 세계경기의 더블딥 논란도 새로이 일고 있는 듯하다. 이 시대 최고의 경제학자로 일컬어지는 폴 크루그먼 교수는 지난주에 “경제가 정상화되려면 앞으로 5년은 걸릴 것이며 한국경제 회복도 과장된 면이 있다”고 무거운 전망을 했다. 그는 “금융시장은 완벽과는 먼 곳에 있고 이러한 인식을 거시경제에 반영해야 되는 동시에 케인스의 정부재정 지출의 중요성도 강조해야 하며 출구전략은 시기상조”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그의 요지는 다시 말하면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되지 않았고 정부 재정지출도 무한정 계속될 수 없고 세계경제가 불균형인 상황에서 당분간 만성적 수요부족 문제에 대한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세계경제학사에는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여 자유방임의 신자유주의까지 갔던 애덤 스미스의 흐름도 있고 정부의 보이는 손을 강조하는 케인스의 흐름도 있지만 혁신의 아버지로 불리는 슘페터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한 데는 정부의 강력한 경기부양책인 뉴딜 정책이 기여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군수의 확장도 기여했지만 좀 더 근본적인 요인은 4대 부문 신산업의 혁신과 생산성 증가에서 왔다고 본다.
첫째, 전기모터의 출현에 따른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의 성장, 둘째로 내연기관의 효율성 증가로 인한 트럭 트랙터 자동차의 확산, 셋째로 석유화학 부문에서 많은 신소재 발명, 넷째로 라디오와 TV 등 오락 통신 수단의 혁신에 있다는 분석이다. 대대적인 기술혁신과 신제품의 출현은 고갈된 수요를 창출해 생산을 확장시켜 실물경제의 새 흐름을 만들었고 이는 이후 50년간 세계경제의 대세적 호황을 이루어 냈다고 본다. 이후에도 세계경제가 수요 부족에 빠질 때마다 정보기술(IT)을 포함한 인류문명을 증진하는 신제품, 신기술 수요가 이를 메웠다.
세계는 이미 나노 바이오 의료 신약 신에너지 친환경제품 로봇 등 많은 분야에서 기술 축적이 숙성단계에 갔다. 인류의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고 세계를 다시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신제품 신기술 신생산방식의 출현이 먼 미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이 올해에 이만큼 다른 나라보다 선방한 것도 지난 외환위기 이후 기업이 일본 못지않게 쌓아온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통해 한계상황 속에서도 세계인의 수요를 자극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는 점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제 곧 2010년이 된다. 내년에는 상처 입은 거인 미국도, 맥 놓고 있던 명문가 유럽도, 잠시 마이너리그로 떨어졌던 일본도 재무장하여 다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것이다. 거기에다 엄청난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 무서운 추격세를 보이는 신흥 개도국 등 모든 나라가 새롭게 정면 승부를 벼른다. 이제는 거시적 경기전망에 일희일비할 때가 아니고 모두 미시적 혁신에 매진해야 될 때이다.
거시적 전망보다 미시적 혁신을
슘페터의 혁신은 기술적 진보뿐 아니라 사고의 진보, 새로운 시장의 개척 등 경제에 충격을 주어 변동을 야기하는 모든 계기를 포괄하는 의미이다. 크루그먼의 말대로 세계경제가 5년 이상 정체해도 혁신을 달성한 나라와 기업은 새로운 강자가 될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출구전략을 이야기하며 화폐금융론적 시각으로 경제를 판단해 나가지 말고 범국가적 혁신의 불을 댕겨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기업이 더는 기술혁신과 신제품개발, 경영혁신을 위한 투자시기를 저울질할 만한 상황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시장으로부터 확실한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투자를 미루는 자세가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이제는 슘페터에게 물어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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