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훈]G20개최, 국가품격 높이는 계기로

  • 입력 2009년 9월 29일 02시 58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내년 11월 한국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기존의 G20 재무장관회의를 정상회의로 격상했고 올해 4월 개최한 제2차 런던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2010년 G20의 의장 역할을 담당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제 제5차 G20 정상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한다.

세계경제의 주요 현안을 협의하고 운용방향을 결정하던 선진 7개국(G7)의 역할이 G20으로 이양되면서 G20이 정상회의 형태로 정례화한 점은 우리로서는 매우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이를 통해 G20에 참여하는 개발도상국과 신흥시장국가의 역할 및 위상이 부쩍 강화됐다. 말하자면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했듯이 신흥시장국가로 부와 권력이 대이동하는 최근 세계경제의 판도 변화를 이제 세계 유수 국가의 수장이 모인 무대에서 실제로 확인했다는 의의가 크다. 한국도 국제외교의 중심에서 세계의 유수한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글로벌 경제를 운용하는 중요한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서는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를 벌써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국 연구소 전문가의 입을 빌려 G20이 2002년 월드컵보다 더 큰 경제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커다란 희망을 전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번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미국 피츠버그에서조차 일반 시민에게 피부에 와 닿지 않았던 G20 회의를 왜 한국이 개최해야 하고 실익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폄하하기도 한다.

의제발굴-이견조율 의장국 역할을

찬반 논의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G20 개최국으로 결정된 것은 대단히 잘된 일임에 틀림없다. G20의 개최국으로서 생기는 반사적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작업이 남은 1년여 기간에 우리가 주력할 일이라고 판단된다. 이를 위해 할 일은 실로 엄청나게 많다. G20 정상회의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선 G20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정상회의로 정례화됐지만 앞으로 개최할 G20은 이 문제를 포함한, 그야말로 글로벌 경제의 운용을 위한 정책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국제회의의 성패는 의제를 확정하는 단계에서부터 거의 결정이 난다. 남은 13개월 동안 정상회의에 참여할 모든 나라가 관심을 가진, 향후 세계경제의 흐름을 관통할 수 있는 의제를 발굴하고 회원국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값진 자산을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둘째로,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G20 정상회의는 한국이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천명했던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 역할을 담당할 자세와 역량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질적인 시험대가 되리라는 판단이다. 선진국인 주요 8개국(G8)을 비롯해 세계경제의 강자로 부상한 다수의 개도국과 신흥시장국을 아우르는 G20은 자칫 선진국 대 개도국의 판세 대결로 전락하기 쉽다. 20여 개 최약체국으로 구성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서 출발해 현재 150여 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무역기구(WTO)로 발전한 세계무역체제를 보더라도 회원국 확대와 더불어 다양한 회원국 의견을 반영해야 하므로 의사결정이 크게 어려워졌다. 지금이야 금융위기라는 모든 나라의 공적(公敵)이 있어 견해차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상황을 거의 벗어날 내년쯤에는 다른 많은 세계경제의 현안을 다뤄야 한다. 참가국 사이의, 특히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미묘한 견해차를 조정할 능력을 이번 기회에 충분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한다면

셋째, 위에서 언급한 의장국 역할과 우리가 추진 중인 중요한 국정과제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가입을 고려할 때, 유엔이 정한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이루기 위한 참가국의 가시적인 노력을 촉구하는 것을 중심의제 중 하나로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국제개발협력이 앞으로도 매우 오랫동안 세계경제의 중요한 현안이 되고, 경제개발 초기에 다른 나라의 원조에 힘입은 바가 큰 한국으로서는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앞둔 이 시점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매우 중요한 분야라는 판단이다. G20 정상회의의 의장국 역할은 이를 위한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남은 준비 기간에 주무 부처와 기획단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혜를 모아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를 기원한다. 사족 같지만, 국가의 이익에만 너무 집착하지 않고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방향으로 G20 정상회의 개최를 활용할 수 있는 정책담당자의 지혜를 기대한다.

박성훈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EU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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