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낙인]검찰 개혁의 5가지 조건

  • 입력 2009년 9월 3일 02시 56분


1989년에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이 터지면서 공안정국이 회오리쳤다. 당시 평화민주당 총재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사건에 연루돼 공안부 검사실에서 하루 종일 조사를 받았다. 자정이 다 돼서 검찰청을 나서면서 노회한 정치인은 기자들 앞에서 좋은 학교 나와서 어려운 시험을 거친 엘리트가 기껏 이런 식이냐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훗날 대통령에 취임한 그의 화두는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였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선다

검찰은 법원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엘리트 집단이다. 하지만 건국 이후 검찰권 행사는 영욕이 교차되어 왔다. 정의의 파수꾼으로서 담대한 검찰권 행사는 국민검사를 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 앞에 무기력한 정치검찰로 지탄받기도 하고, 의욕만 앞선 젊은 검사의 과잉수사는 선량한 시민을 인격 살인하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이제 검찰이 환골탈태해야 한다. 무엇이 국민을 위해 바로 선 검찰인가를 보여줘야 한다. 새 검찰총장의 취임 제일성은 검찰 개혁이다. 젊은 검사와 끝장토론도 마다하지 않는다. 평생 검찰에 몸담아 온 총장이 검찰을 향해서 개혁을 주창하는 그 자체가 더는 개혁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이 시대의 메시지다.

첫째, 조직체계상 법무부와 검찰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처럼 법무부와 검찰이 온통 검사 일색인 조직으로는 기관에 부여된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검찰권은 대검찰청 중심으로 작동돼야 한다. 검사는 수사에 전념해야 한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견인차여야 하는 법무부는 검사가 아닌 법무행정 전문가로 대체돼야 한다. 그래야만 발전적인 상호 보완이 가능하다.

둘째, 검찰 인사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검찰청법상 검찰은 검찰총장과 검사만 있다. 검사는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어느 조직이든 평생을 의탁하는 사람이면 누가 적격자인지 다 안다. 검찰 인사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한 검찰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객관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검찰인사위원회가 실질적으로 작동돼야 한다. 장기적인 인사 원칙도 제시돼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장이 바뀔 때마다 인사 원칙이 변경돼서는 안 된다. 1년이 멀다 하고 행해지는 지나치게 잦은 검찰 인사로는 조직의 안정을 추스를 수도 없고 제대로 된 수사도 이뤄질 수 없다. 전국단위로 이뤄지는 검찰 인사야말로 예측 가능해야 한다.

셋째, 수사 브리핑 제도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언론 보도를 통한 국민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인격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보다는 재판 단계에서 피고인의 동일성을 식별하거나 범죄 혐의를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민도 비난앞서 법과 원칙 존중을

넷째, 정의의 칼은 언제나 형평의 저울추에 맞춰야 한다. 실적과 공명심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기소독점주의란 무기에 지나치게 의탁하지 말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수호할지 고민해야 한다. 검찰 수사를 통해서 처벌받는 대다수는 집안의 가장이다. 가장이 구속되는 순간 파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인신구속의 사회경제적 파장을 심각하게 되새기면서 검찰권을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편파수사 표적수사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과학수사에 더욱 정진해야 한다. 검찰에도 전문 영역이 필요하다. 다원사회에서 검사가 모든 영역의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끝으로 검찰 개혁에 국민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공익의 대변자다. 검찰을 비난하기에 앞서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사회가 뿌리내려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헌법학교수 한국법학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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