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오명철]쉰다섯 남자의 새해 소망 다섯 가지

  • 입력 2009년 1월 7일 02시 59분


올해 우리 나이로 쉰다섯이 됐다. 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 불황 속에서 26년째 한 직장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며 지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큰 복락인가. 나는 지금의 내 처지와 형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오십 중턱의 고비를 넘느라고 지난 2, 3년간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참고 인내해 준 가족과 친지, 선후배와 벗, 지인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그들에게 받은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새해 다섯 가지 결심을 했다. 지난해 말부터 곰곰이 생각해 왔던 일들이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도 돌보며 살 것

첫째, 나를 위해 살겠다. 물론 나만을 위해 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른 살에 결혼해 지난 25년간 가족을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한 적이 많았다. 일찍 홀로 되신 모친과 장모(작고)를 위해 내 가족의 행복을 유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지난 25년간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나름대로 열심히 언론인으로서의 시대적 소명과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또 가장(家長)으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차선(次善)은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대학에 진학시켰고, 아들은 지난해 말 2년간의 군 복무도 마쳤다. 가족 때문에, 특히 나로 인해 많은 고생을 한 아내도 올해부터 대학원에 진학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미술치료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위해 시간과 물질을 최대한 사용하면서 내 노후를 준비할 것이다. 남보다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가 아닌가.

둘째, 디지털과 친해지겠다. 그동안 스스로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임을 자랑해 왔다. 신문사에서 가장 늦게까지 원고지로 기사를 작성한 전력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다니기도 했다. 물론 아날로그 정서는 소중하다. 하지만 앞으로 남은 생애가 30년 이상이라고 가정할 때 아무래도 디지털에 익숙해져야 인생이 편할 것 같다. 아직은 PC로 기사 작성하고 e메일을 보내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사진 전송도 하고 원하는 프로그램도 내려 받겠다. 딸이 내 애창곡들을 저장해 준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데도 이미 익숙해졌다. 윤송이 박사 덕분에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 보내기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모티콘으로 새해 인사를 보냈을 정도다.

셋째, 나무와 꽃 이름 100가지 익히기다. 그동안 나무와 꽃 이름을 술술 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말년의 미당(未堂)처럼 산 이름 1000개를 외우는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겠지만 잎이나 꽃 열매가 다 떨어진 상태에서 조금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는 될 테다. 다행히 이 분야의 ‘도사(道士)’이신 법정 스님이나 국립산림과학원 정헌관 박사, 미래상상연구소 홍사종 대표 등이 계셔서 목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쉴 휴(休)’자는 ‘사람 인(人)’에 ‘나무 목(木)’이 합쳐진 자가 아닌가. 꽃과 나무 이름을 익히기 위해서는 산과 들, 수목원에 많이 다녀야 할 테고, 그럼으로써 영육(靈肉)의 건강과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 모두 살아남자’

넷째. 세대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겠다.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올해도 직업 지식 계층 나이 종교 등을 넘어 다양한 분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겠다. 물론 오래된 친구들과도 결코 멀어지지 않겠다.

다섯째, 더하지 않고 덜어내겠다. 남다른 수집벽이 있어 책이나 소장품 등을 오래도록 간직해 왔다. 하지만 다시 읽는 책이 과연 몇 권이나 되겠는가. 소중한 것은 나눌수록 빛이 난다고 했다. 이따금씩 내가 가진 책과 물품들을 덜어내 더 필요한 이들에게 보내거나 나눠 주겠다. 나는 ‘풍요’보다 ‘텅 빈 충만’을 누리며 올 한 해를 지내고 싶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 살아남자’고.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