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中서 길들여진 ‘관제 데모’ 후유증

  • 입력 2008년 4월 30일 03시 00분


중국 헌법 35조는 ‘중국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시위의 자유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만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는 1인 시위도 불가능하다.

2006년 8월 25일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에 사는 농민 런중지(任鍾吉·55) 씨는 당 간부에게 빼앗긴 토지를 돌려달라며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다 1분이 안돼 공안에 끌려갔다.

베이징 남역 부근엔 갖가지 억울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전국에서 올라온 민원인들이 모여 사는 상팡춘(上訪村)이 있다. 눈을 감기 전에 한을 풀어야 한다며 생업도 팽개치고 10∼20년씩 이곳을 전전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국가신방국(國家信訪局)에 탄원서를 내는 것뿐이다.

하지만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때가 있다. 1999년 5월 중국 전역은 미국을 성토하는 시위로 들끓었다. 유고슬라비아 주재 중국대사관에 대한 미군의 오폭(誤爆)에 항의하는 집회였다.

2005년 4월엔 일본의 검정교과서 내용에 항의하는 반일시위가 전국을 휩쓸었다. 성난 군중들은 일본 상품 가게를 공격하고 간판을 끌어내렸다.

모두 중국 정부가 묵인하거나 방조한 사실상의 ‘관제 데모’였다. 관제 데모 때는 공안이 폭력 행위를 거의 제재하지 않는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되 폭력을 엄금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크게 다르다.

27일 서울에서 발생한 중국인들의 폭력 사태에 대해 중국인 유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면 ‘티베트 독립 지지분자들이 먼저 고함을 질러 화를 돋웠다’는 대목이 많다. 하지만 이는 자유로운 의사표시일 뿐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못 된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자국의 관제 데모 양태가 국제사회에선 통할 수 없음을 차제에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닝푸쿠이(寧賦魁) 주한 중국대사는 28일 자국 유학생들의 폭력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29일엔 중국 외교부가 피해 경찰관과 기자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한국의 인터넷 웹사이트엔 시위 현장에 있던 중국인들의 신상을 폭로하는 글이 떠돌아다닌다. 과격시위를 벌인 중국 유학생들의 행동은 잘못이지만 한국인의 대응도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이 이웃 사이인 양국 국민 간의 감정 대립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란다.

하종대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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