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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12월 10일 19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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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북은 이보다 더한 좌절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추세라면 남쪽엔 보수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달라는 대로 주고, 받으면서도 큰소리치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은 잊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빈자리는 상호주의가 메우게 될 것이다.
지지율 1위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도 언론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남북 합의사업들을 따져 보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즉각 “과거의 대결적 대북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지만 괜한 트집이다. 정권의 성격이 바뀐다면 무슨 정책인들 왜 따져보지 않겠는가. 결국 북은 이제 어떻게 하면 남한의 새 정권과 잘 지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남쪽 사회가 보수화됐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간단한 징후 하나를 보자. 10월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7개 대학 신문사가 대학생 207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5.1%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적’이라고 답했다. ‘중도적’은 23.2%, ‘진보적’은 33.5%였다. 보수와 중도를 합하면 58.3%에 이른다. 서울대만 떼어서 보면 보수의 비율은 40.5%로 2000년의 13.2%, 2002년 17.2%, 2005년 27.6%보다 훨씬 높아졌다. 북이 ‘혁명의 전위’로 치켜세웠던 대학생들마저 이렇게 변했으니 다른 세대야 오죽할까.
햇볕 10년의 추억, 이젠 버릴 때
이런 변화에 북은 적응해야 한다. 무엇보다 상호주의에 익숙해져야 한다. 보수정권이라고 해서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엄격한 대칭적 상호주의를 고집하지는 않겠지만 큰 틀에서의 원칙은 지켜 나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새 정권은 남북 간 교류협력을 시혜(施惠)가 아닌 거래(去來)로 보고 점차 일정한 규범의 준수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전쟁 난다고? 천만에. 상호주의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禮義)에서 출발한다. 이쪽이 호의를 베풀면 저쪽도 최소한의 성의 표시는 해야 한다. 흔히 “가난한 북이 뭘 주겠느냐”고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과거 우리 어머니들은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웃집에서 떡 접시를 받으면 마당의 감나무에서 감이라도 몇 개 따서 보냈다. 이것이 상호주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줄 게 없으면 국군포로나 납북피해자 몇 사람 만이라도 돌려보내야 한다.
예를 더 들어 보자. 북은 지난주 제9차 적십자회담에서 이산가족 영상편지 교환에 합의해 줬다. 촬영·편집장비와 차량 2대 지원 외에 영상편지 한 통에 1000달러씩 받는 조건이라고 한다. 장비 대 주고 금강산에 번듯한 이산가족 면회소까지 지어 줬는데 또 돈을 내라니, 지나치지 않은가. 입만 열면 ‘민족끼리’를 외치면서 이산 동포의 한(恨)까지 돈벌이에 이용하겠다는 것인데, 제대로 된 정부라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햇볕주의자들은 북을 끌어안으려고 애를 썼지만 북은 이처럼 다루기가 더 힘든 상대가 되고 말았다. 햇볕정책을 역이용해 핵을 갖게 된 것이 주된 이유다. 그런데도 계속 햇볕만을 쪼여야 하나. 새 정권에선 그렇게 돼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북이 남의 변화에 맞춰야 한다. 지난 10년간 열심히 북의 코드에 맞춘 결과가 이 모양이라면 바꿀 때도 됐다.
진정성 보여야 참된 화해 가능
돌아보면 참 희한한 일이다. 정통성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비위를 맞춰야 할 쪽은 북인데도 우리가 전전긍긍했다. 행여 북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달라는 것은 제대로 줬는지 늘 조마조마했다. 10년째 그러다 보니 햇볕이 무슨 신성한 이념이라도 되는 양 오인(誤認)돼 반대하는 사람은 반민족 반통일 반평화 세력으로 몰렸다.
새 정권은 이런 미망과 주술(呪術)에서 벗어날 것이고, 또 벗어나야 한다. 북 또한 더는 남을 만만하게 보지 않아야 한다. 앞에서는 챙기고, 뒤돌아서서는 좌파를 부추겨 남한 사회를 흔드는 이중적인 행동으로는 참된 남북 화해와 협력을 이룰 수 없다. 매사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게 사는 길이다. 앞으로 5년, 길다면 긴 시간이다.
이재호 논설실장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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