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경준]매파, 비둘기파, 그리고 허풍파

  • 입력 2006년 5월 16일 03시 03분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눈매가 날카롭고 콧날이 오뚝하다. 매와 닮았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올해 4월 그가 총재가 되자 ‘매파’가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이 바닥에서 매파 한은 총재란 소신 있는 통화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현 상황에 비추자면 정부(특히 재정경제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콜금리(금융회사 간 초단기 자금거래 금리)를 올려 돈줄을 죌 수 있는 강단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이 총재가 매파로 분류된 것은 물론 외모 때문은 아니다. 한은 독립에 대한 남다른 열정에 취임 초기의 강성 발언이 더해진 결과다.

그는 취임사 및 취임 기자회견에서 “선제적(先制的)인 통화정책을 펴겠다”, “부동산 불안을 상당한 우려를 갖고 관찰하고 있다. 물가가 통화정책의 전부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이를 종합하면 ‘안정된 물가만 놓고 보면 금리를 올릴 여지가 적지만 부동산 가격 급등에 금리인상 카드로 대처할 수도 있다. 때를 놓치지 않겠다’로 해석된다.

금리인상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시중에 넘쳐 나는 돈을 빨아들여 주식 부동산 등 실물자산의 가격을 떨어뜨린다. 돈 빌려 쓰기가 어려워진 기업들은 투자를 줄인다. 경제성장률을 낮출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세 차례 콜금리를 올리자 정부는 ‘한은 독립성 훼손’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노골적으로 밝혀 왔다.

그런 차에 ‘매파’가 취임했다.

그러나 이 총재를 포함한 7명의 금통위원은 석 달 연속 콜금리를 올리지 못했다. 특히 11일 금통위 회의 때 이 총재의 발언은 ‘선제적 통화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이번 금통위 회의 직후 발표된 성명의 표현은 ‘수출은 견실한 성장, 민간소비 회복, 설비투자 증가, 부동산 가격 오름세 지속, 금융회사 대출 대폭 증가…’ 등 마치 금리인상 때의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금통위는 환율과 유가를 들어 콜금리를 동결했다. 원화가치와 국제유가의 급등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는 것.

그러자 금융가에서는 “여러 가지 말 못할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며 “이 총재는 매는 고사하고 비둘기도 아닌 것 같다”고 폄훼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들 중에는 금리인상에 돈을 걸어 손해를 본 이가 있을 수도 있다. 통화정책을 총재 한 사람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현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한지 딱 잘라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총재는 자신과 금통위에 대한 평가가 급변했다는 점은 귀담아들어야 할 것 같다. 통화정책의 성과는 시장의 신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매파, 비둘기파 외에 보복파, 허풍파, 시험보복파 등이 있다고 했다.

보복파는 매파에 대해서는 매파처럼, 비둘기파에 대해서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하고, 허풍파는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반격을 받으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며, 시험보복파는 상대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매파, 강하게 나오면 비둘기파로 변신하는 부류를 말한다.

혹시라도 이 총재에 대한 평가가 허풍파, 시험보복파로 번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정경준 경제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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