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찬 여자가 후배에게 채였다? 약백이<10>

  • 입력 2005년 3월 20일 10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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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사는 32살의 자칭 노총각 우수한(가명)씨는 지난 6년간 맞선을 모두 100번 가량 봤다. 이 가운데 대략 2번은 퇴짜를 놓고 나머지는 퇴짜를 맞았거나 서로 무관심했단다. 100번이나 맞선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났을까. 그는 맞선을 보면서 경험했던 충격적이거나 가슴 아픈 사연들을 글로 옮겼다. 이번에 10회째 글을 내보내며 앞으로 12회까지 연재할 예정이다. <편집자주>

[어느 총각의 101번 맞선기](10)후배보다 훨 못난 '나'

눈 돌아가는 일, 그런데 얼마 후 다시 만난 후배 애인은 또 다른 여자

새해 들어 아직까지 소개팅이 없다.

확실히 1~2년 사이 소개팅 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나도 나이를 먹는 모양이다. 어렸을 때는 주변에서 서로 소개시켜 주겠다고 난리였는데(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무진장 귀찮게 부탁해서 이뤄진 것이지 자발적으로 해준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ㅋㅋㅋ)이제는 그런 주변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차였던 여자가 어느 날 후배의 애인이 되었고 그리고 후배에게 버림받았다면 나는 무엇인가.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푸념 섞인 말투로

“나의 시대도 다 갔는가 보다. 요즘은 소개팅도 안 들어오네. 올해는 한번도 소개팅을 못 했네” 라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은 말을 한다.

“야. 올해라고 해봐야 이제 한달 지났어. 지둘려...”

음... 그렇구나, 올해가 이제 겨우 한 달 지났구나.

올해는 단 한번의 소개팅을 하는 것이 내 새해 조그만 소망이다. 소개팅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고 그렇게 알콩달콩 추억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내가 차였던 여자가 어느 날 후배의 애인이 되었고 그리고 후배에게 버림받았다면 나는 무엇인가. <이미지=디트news24제공>

이번 얘기는 너무 많은 소개팅을 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까. 차였을 당시에는 한두 번 차여보는 것도 아니고 별 충격이 없었는데 1년 뒤 뜻하지 않게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12월로 기억 된다.

주변지인의 소개로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여자를 만났었다.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나이도 나와 별로 차이 나지 않았고 외모는 보통 이상이었으며 성격이 좀 차갑게 느껴졌던 여자였다. 물론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나만 차갑게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당시의 느낌은 그랬다.

당시 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추운 일요일 만나서 소갈비를 맛나게 먹고 오후에 또 일하러 갔던 일이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녀가 소개팅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즈음부터 계속해서 약속이 있다고 했던 것이 유독 기억이 난다.

“제가 오후에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거기 가봐야 되요. 친구가 혼자 집에 있는데 영화 같이 보기로 했거든요”

뭐 이랬던 것 같다. 얼마 전 TV에서 모 프로그램을 보는데 거기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소개팅에서 만났을 때 다른 약속이 있다는 핑계를 댄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사실 내가 소개팅을 그렇게 많이 하고 다녔어도 여자 심리에 대해서는 완전히 초자수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기도 했지만 하여간 그랬다.

한번 만남을 가진 후 그녀는 내 연락을 받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 추해지기 싫어 연락을 안했다.

그렇게 그녀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2002년 10월 어느 일요일로 기억된다. 앞글에서도 언급을 했듯이 나는 당시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는 등 직업의 특성상 휴일이 없었다. 당시도 일요일날 회사에 출근해 후배에게 일을 마무리하라고 시키고 있는데, 그날따라 유독 후배가 서두르는 것이다.

“야. 너 약속 있냐? 왜 이렇게 서두르냐. 천천히 해. 그러다 실수 한다”

“아녀요. 약속은요. 일요일이니까 빨리 끝내고 가려고요”

‘이상하다. 이놈이 이럴 놈이 아닌데. 저나 나나 일요일 뭐 특별히 할 일 없어서 회사 나오는 것 피차 뻔히 아는구먼. 뭐 일요일이니까 빨리 끝내고 쉬려고 한다고?’ 뭔가 냄새가 난다. 다년간의 소개팅 경험에 비춰 볼 때 이것은 소개팅의 징조다.

“솔직히 얘기해봐. 그럼 내가 남은 일 처리해 주께. 너 오늘 여자 만나지?”

“아녜요. 무슨 여자를 만나요”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 틀림없이 여자 만나는 분위기다. 그렇게 대화를 마치고 후배가 일하는 동안 간간히 핸드폰이 울렸고 그럴 때 마다 .후배는 “알았어. 빨리 나갈께”라고 짧게 대답하고 급히 자기 일을 마무리했다. 일처리가 썩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급한 약속이 있는 것 같아 그냥 눈 감아 주었다.

월요일.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주일의 시작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제 그 후배의 표정이 무척 밝아 졌다는 점과 들리는 소문에 후배가 어제 소개팅을 했다는 것이다. 점심때 소개팅을 했고 일을 마무리하고 같이 영화보기로 했던 모양인데 일이 안 끝나니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했던 것이다.

“야. 너 어제 소개팅 했다며, 짜식 진작 얘기 하지 그럼 내가 일찍 보내 주잖아”

“괜찮아요”

“그래, 어제 둘이 영화 봤냐? 뭐 봤냐? 아가씨는 뭐하는 아가씨냐?”

참 나도 한심한 놈이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은지 후배에게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OO회사에 다니는 아가씨고요 나이는 저랑 동갑이예요”

‘가만....이놈이 지금 OO회사라고 했나? OO회사라면 내가 작년에 소개팅에서 차였던 여자가 다니는 회사 아닌가. 그리고 나이도 이놈하고 동갑이면 나랑 소개팅했던 여자와 나이도 같다는 얘긴데...’ 뭔가 낌새가 안 좋았다. 그냥 이 정도에서 질문의 멈췄어야 했는데 어디 사람의 궁금증이라는 것이 한이 있겠는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정적 질문을 하나 날렸다.

“무슨 부서에서 근무 하냐?”

“총무과에서 근무한다는데요.”

오... 신이시여.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이야기의 전후 사정을 따져 봤을 때 1년 전 나를 찼던 그녀가 확실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자. 자신을 찼던 여자가 내 주변사람과 사귄다는 것... 상상만 해도 참 기분 구리구리하지 않는가.

도대체 일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저놈(물론 여기서는 후배를 지칭)보다 못한 게 뭐지. 왜 쟤는 되고 나는 안된단 말인가? 이유를 모르겠다’ 착잡한 기분으로 내 자신을 반성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평가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선배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녀에게 화가 났다. 뻔히 후배와 내가 같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알았을 텐데 소개팅에 응했다는 것도 내 상식선에서는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뭔가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후배보다 뭐가 좀 모자란가? 그러니까 나를 찼던 여자가 후배는 사귀지’

혼자 아무리 머리를 움켜쥐고 생각해 봐도 내 문제가 뭔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위로와 함께 조언을 구할 요량으로 사건의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뭘 그런 걸 물어 임마. 니가 오죽 못났으면 그런 꼴을 당하냐. 너야 문제 많지. 거울보고 생각해 봐”

이렇게 냉혹한 비판을 해주는 선배도 있었고,

“야, 그 여자가 참 이상한 애다. 너랑 명우(문제의 후배)랑 같은 회사 다니는 것 알면서 그렇게 소개팅에 나왔다는 거 아냐? 잘 됐어. 그렇게 개념 없는 여자랑은 사귀었어도 문제다”

나에게 위로를 해주는 선배도 있었다.

그 사건이 이후 후배 대하기가 조금은 서먹서먹하게 느껴졌다. 후배도 대충 직원들한테 들어서 나와 자기가 사귀는 여자가 소개팅을 한 사실을 아는 눈치였다.

참... 분위기 서먹서먹하고 무지 안 좋았다. 어디까지나 여자는 여자고 일은 일이다. 뭔가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나는 후배를 불렀다. 그리고 솔직히 얘기했다.

“명우야, 너도 솔직히 눈치 채고 있었을 테지만, 너랑 지금 사귀고 있는 아가씨 1년 전에 나랑 소개팅했던 아가씨다”

“예, 알아요. 선배, 얘기 들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그 여자한테 화도 나고 너도 조금 야속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신경도 많이 쓰였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가 괜히 오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너한테 혹시 신경질 적으로 대했다면 미안하고 앞으로 그 아가씨랑 잘 사귀어라”

“예”

나는 정말 많은 고민과 고민을 거듭한 끝에 후배에게 그런 말을 했는데 후배는 별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맞다. 오늘 나 혼자 또 오버한거다. 그 후로 후배는 웃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고 그런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은 묘했다. 어쩌겠는가. 다 소개팅 많이 하고 여기저기 차이고 다닌 내 탓이지. 그렇게 후배와 그녀는 사랑을 키워갔고 내가 직장을 옮기는 관계로 둘 관계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얼마 전 주말 뜻하지 않게 문제의 그 후배를 만났다. 그런데 옆에 있는 여자가 전에 나랑 소개팅 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조용히 물어봤다.

“야, 저 여자는 누구냐? 그 여자랑은 끝났니”

“제 여자친구예요, 걔랑은 끝난 지가 언젠 데요”

아... 이 놈은 여자를 차고 다니는데 나는 이놈이 차는 여자에게 차이고 다니는 신세구나.

**오늘의 소개팅 원칙하나

될 수 있으면 소개팅 첫 만남에서는 나에 대해 자세히 얘기 하지마라. 뭔가 2%로 부족한 것이 있어야지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있다.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면 신비감은 물론 식상함까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상대편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이 다음 만남을 위해 훨씬 더 유리하다.

<우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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