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제균/EU의 ‘한국 걱정’

  • 입력 2004년 4월 2일 18시 37분


“5월 1일부터 회원국이 25개로 늘면 유럽연합(EU)은 바벨탑이 되는 게 아닌가?”

지난달 말 벨기에 브뤼셀의 EU본부에서 열린 EU 확대 세미나에 참석한 기자는 장 크리스토프 필로리 대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현재 11개인 EU 공식 언어는 확대 이후 무려 20개로 늘어난다. 언어 차이는 ‘거대 EU’가 맞닥뜨릴지 모를 분열을 상징한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건설도 결국 말이 통하지 않게 되면서 실패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미 바벨탑이다. 그러나 잘 지어지는 바벨탑이다. (통역 및 번역에) 약간의 돈이 들기는 하지만 완벽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필로리 대변인의 답변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유럽 통합 운동 초창기 ‘유럽을 하나로 묶는다’는 이념은 ‘하늘 끝까지 쌓겠다’는 바벨탑의 꿈만큼이나 허황되게 들렸다. 그러나 2002년부터 3억명의 유럽인이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쓰더니 러시아 코앞까지 EU를 확대하는 역사적 사건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대역사(大役事)의 현장인 브뤼셀에는 EU본부에 근무하는 유로크라트(Eurocrat·EU 관료)와 EU를 상대로 자국과 자사 이익을 챙기는 외교관, 로비스트 수만명이 불철주야 뛰고 있다. 여기에 5월부터 회원국이 되는 중부 및 동부 유럽 10개국의 외교관과 기업인까지 쏟아져 들어오면서 EU본부 주변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오행겸(吳行兼) 주벨기에 대사 겸 주EU대표부 대사는 “EU 회원국 외교관 대부분은 식사를 샌드위치로 때우며 정신없이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EU본부에서 만난 유로크라트 가운데는 한국을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한반도 정책 담당자인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스는 “올해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참석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국내 상황을 묻는 외국인들에게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라고 대답하면서도 탄핵 회오리와 국론 분열로 어지러운 국내의 모습이 교차돼 착잡했다. 한국이 경쟁 상대인 EU로부터 걱정을 듣는 처지라는 것을 국내에서는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브뤼셀=박제균 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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