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천광암/사이버전쟁

  • 입력 2004년 1월 12일 18시 15분


1999년 5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을 겨냥한 1급 비밀계획을 승인했다. 해커들로 하여금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외국은행 계좌에 침입해 거래를 중단시키도록 하는 내용도 이 계획에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사이버전’은 이렇게 인류의 전사(戰史)에 공식 등장했다. 이후 세계 각국은 사이버전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경쟁에 앞 다퉈 뛰어들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등 10여개국은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사이버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컴퓨터와 인터넷은 ‘비폭력 수단인 언어를 사용하는 전쟁’이라는 심리전의 ‘핵심 병기’로 떠올랐다. 유고전쟁 등에서 인터넷과 e메일이 보여준 위력을 보면 심리전과 사이버전을 따로 떼어내 생각하기는 어려울 정도다. 사이버전의 또 다른 특징은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2001년 미국 정찰기와 중국 전투기의 충돌사고로 두 나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렀다. 비록 국가간의 적대행위는 없었지만 양국 네티즌간의 웹사이트 공방은 ‘저(低)강도 사이버 전쟁’이었다고 할 만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일본의 억지와 한국의 이미지에 대한 일본 웹사이트의 악의적 왜곡에서 시작된 한일 네티즌간 감정싸움이 격화되고 있다. 자동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대국의 특정 사이트를 마비시키는 등 일부 사이버 테러적인 수단까지 동원되고 있다. 일부 한국 네티즌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일본문화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새해 첫날부터 전범(戰犯)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억지주장을 한 데는 일본 내 극우세력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이 결연한 의지와 준엄한 분노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의 문화에 대한 악의적 매도나 사이버테러는 자제하는 것이 성숙된 모습이다. 극우세력보다는 한국에 대해 호의를 갖고 있거나 적어도 진실 앞에 겸허한 자세를 보이는 일본인이 다수일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진실을 바로 알리고 이들의 양식에 호소하는 것이 심리전에서 이기는 길이 아닐까 싶다.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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