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안영식/안시현 '소중한 28위'

  • 입력 2003년 11월 17일 18시 45분


부푼 꿈을 안고 미국에서 열린 LPGA 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에 출전한 안시현(19·코오롱)이 출전선수 29명 가운데 28위에 그쳤다. 2주 전 CJ나인브릿지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일약 ‘신데렐라’가 된 그로서는 실망스러운 성적표다.

우승한 CJ나인브릿지클래식이나 거의 최하위를 한 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 모두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한 미국LPGA대회. CJ나인브릿지클래식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열렸다고는 하지만 거리나 그린 빠르기 등 코스 세팅이 미국 대회 못지않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안시현은 한마디로 준비가 부족했다. 미국LPGA 투어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량 체력 스폰서 등 세 가지를 겸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안시현은 특히 체력이 문제였다. 토너먼트오브챔피언스에 출전하기 전 2개 대회에 연속 출전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체력이 바닥나 나흘 연속 오버파를 기록할 정도라면 ‘아메리칸 드림’은 이룰 수 없다.

미국LPGA 투어는 매주 드넓은 미 전역을 순회하며 열린다. 사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샷 기술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런데도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지존’의 자리를 지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쇠 체력이다.

또 한 가지, 안시현은 생애 첫 미국LPGA대회 우승으로 들떠 있었다. 직전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가 다음 주 예선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게 골프다. 하물며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총집결한 미국LPGA 투어에서 요행은 기대할 수 없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좋은 성적을 내기 어려운 마당에 들뜬 기분으로 채를 잡았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2라운드 경기 도중 퍼팅선상의 벌을 수건을 흔들어 쫓았다가 2벌타를 먹은 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해마다 적지 않은 국내 선수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떠올리며 미국LPGA의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좌절한다.

2001년 국내 대회에서 2승을 거둔 뒤 미국 무대에 뛰어든 이선희(29)는 이듬해 미국LPGA 투어 22개 대회에 출전했으나 모두 예선 탈락했다. 장정(23)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올해도 악전고투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대회 3관왕 이미나(22)는 올해 처음 응시한 미국퀄리파잉스쿨에서 고배를 마셨다.

미국LPGA에서 성공하려면 착실한 준비가 필수다. 내년 미국 무대 본격 진출을 앞둔 안시현은 이번 대회에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타산지석이 되어야 한다.

안영식 스포츠레저부 기자 ysa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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